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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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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얼론

나는 그의 해적선에 오를 준비가 되어있다(2020)

제주의 삶이 기대와는 달리 엉망진창으로 느껴지던 때에 젠얼론의 음악을 처음 만났다. 나는 당시 실업급여를 받으며 청수리의 작은 쌀국수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접시를 닦고 쌀국수를 조립(?) 해서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는 잡무를 맡았는데, 손님이 없으면 빈둥대다가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까 싶어 답답해 하던 시절 이였다. 그 쌀국수집은 때때로 음악공연을 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장형이 어려운 가게형편에도 불구하고 참 고집스럽게 공연을 열었는데 젠얼론도 그렇게 그 쌀국수 집을 찾아온 뮤지션 중 한명이였다. 당시 나는 음악을 그만둘 생각 반 해야하나 생각 반으로 복잡한 심정이였기에 무대에 서는 뮤지션들을 옹색하게 바라봤었다. 그리고 기대보다 별로였던 뮤지션들의 공연에는 혹평을 가하는 식으로 나의 옹색함을 메우곤 했다. 그렇게 옹졸했던 시기에 만났던 젠얼론의 무대는 여러의미로 나를 놀라게 했다. 유순한 얼굴로 조용히 미소짓던 그의 표정이 무대에서 투사의 얼굴로 변했고 그가 연주하는 음악은 내가 알던 일반적 포크 음악이 아닌 에너지로 가득찬 펑크밴드의 라이브의 한 조각이 그 공간으로  툭 떨어져나와 있는것만 같았다. 영어로 쓴 가사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숨은 사연이 있는듯 했다. 한곡한곡 진정성을 듬뿍 담아내 열창하던 젠얼론의 공연은 그 쌀국수 집에서 본 공연중 첫손가락에 꼽을만한 공연이였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던 시절에 세상을 향해 나 대신 소리를 질러주는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 이였고 특별한 위로로 기억되는 순간이다. 

그 첫만남 이후 4년이 흘렀다. 나는 나대로 제주의 삶이 익숙해져갔다. 음악을 접을 생각을 그만두고 다시 새로운 밴드를 시작해 1집 앨범을 냈고 문화예술기획 관련 일을 하며 나름 생활의 안정도 찾았다. 그러던 차에 제주의 뮤지션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묻고 기록하는 지금의 프로젝트를 제안 받게 되었다. 코로나 19가 온 세상을 잠식해버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뮤지션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내던 공간 혹은 장소의 소중함을 다시 환기하고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공간을 찾아 그곳에 노래를 들려주는 의도로 기획된 프로젝트.  제주에서 활동하는 몇몇 뮤지션 을 섭외할 수 있다는 제안에 젠얼론을 이 기회를 통해 제대로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2집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4년동안 나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처럼 젠얼론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겠구나. 만나야겠다. 몇차례에 걸친 연락 후 우리는 함덕 해수욕장 서우봉 해변에서 서로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젠얼론의 음악경력의 첫출발부터 곡과 가사를 쓰고 직접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 커리어의 큰 전환을 맞게 된 순간에 대한 질문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요즘 같은 시절이야 싱어송라이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젠얼론 1집이 나오던  2013년  그리고 그 이전 부터 노래를 써왔을 그 시절에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세상에 직접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젠얼론은 스스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켰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이유에서 였는지 그는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기간동안 자연스럽게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노래라는 그릇에 담아낼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음성메모로 기록한 창작의 조각이 실타래처럼 묶여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노래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한다.

젠얼론이 고백하길, 자신이 너무 좋아하던 보컬리스트가 있었기에 자신이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단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 스스로도 드러머이기에 메인 보컬로 무대에서 설득력이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건 그냥 무리라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사실 대단한용기가 아니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지금에야 젠얼론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아마 처음 싱어송라이터로 기타를 메고 마이크 앞에 섰을때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무대에서 너무 당당하다. 기타하나와 목소리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무아지경을 이야기 했다. 그저 노래 하는것에 집중하고 순간에 몰두하게 되는 그 지경. 무대 밖과 무대위의 젠얼론이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그 순간부터 그는 무아지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일까? 젠얼론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순간이 떠오르며 고개가 끄덕거려 진다. 

나는 젠얼론 1집을 듣다보면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부화의 욕망 같은 에너지를 떠올리게 된다.  지난 세월에 대한 분노,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벽들. 이런 감정의 조각들을 파편화된 가사로 끄집어 내 멜로디에 실었다. 파편적 가사들 은 서사를 전달하기 보다는 모호한 심상의 색채로 그려진 그림처럼 인식되게 된다. 젠얼론의 음악을 듣고 내 마음에 그린 그림은 나라는 존재를 둘러싼 껍질을 깨트리는 망치같은 이미지 였다. 따뜻한 조언이 아닌 매서운 독설 이였다.

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젠얼론에게 2집에 수록될 미발표곡중 1곡을 들려줄 수 있는지 요청 했었다. 7년만에 완성된 2집의 일부분이라도 들어보아야 요즘의 젠얼론을 조금이나마 짐작 할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젠얼론이 ‘it’s over’라는 곡을 가사와 함께 보내왔다. 믹싱까지 마무리된 음원을 들으면서 조금은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탁을 한것이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곡도 곡이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와 변화들이 반가웠고 그런 사실이 인터뷰에 큰 도움이 될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가사를 유심히 살피던 내눈에 어떤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내가 젠얼론 1집을 들으며 가사를 곱씹던 중 ‘pirate:해적’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마침  새로운 앨범에 담길 ‘it’s over’ 의 가사에 이 단어가 다시 등장 하는 것이였다. 

주로 영어로 가사를 쓰는 젠얼론은 라임을 생각해서 이런저런 단어들을 찾아서 배치해보곤 한다고 하지만 1집에 등장하는 해적이라는 단어는 라임이라고 하기엔 다소 생경하게 등장 하는 느낌도 있었고 신곡의 가사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혹시 그의 가사에 등장하는 ‘해적’이라는 존재가 젠얼론의 음악적 페르소나는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집 타이틀곡인  ‘old diary’ 에서 젠얼론은 자신을 가라앉고 있는 녹슨달의 이성적 성인(聖人) 이라고 고백했다. 그 고백뒤의 가사에는 스스로 자신을 가둘 수 밖에 없었던 세상으로 부터 경험한 감정들을 파편으로 나열한다. 세상은 젠얼론에게 그런 이성적 성인이 아닌 해적으로 살 수 밖에 없게 했던 것일까? 우리는 모두 스스로가 이성적 성인(聖人)으로 살아갈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퇴락하여 결국 추락한 치외법권적 존재인 ‘해적’같이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것을 노래한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신곡의 It’s over 중  ‘ 나는 오래된 해적이 위스키를 마시는것을 보네. 그는 나의 갈색왕관을 머리 아래로 끌고 있다.’ 라고 번역한 가사에서 나는  젠얼론이 해적이라는 캐릭터를 이유없이 등장시킨것은 아닐거라고 나름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순간 낡은 해적선의 뱃머리에서  선장모자를 뒤집어 쓰고 당당하게 기타를 메고 서있는 젠얼론의 모습을 상상했다. 잘 어울린다. 

세상을 향해 고함치는 듯한 그의 노래는 그저 세상의 부조리함을 저격하는 진부한 저항이 아니다.  끈질긴 자아비판과 현실인식 또한 비수처럼 담고 있다. 마치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고독한 해적의 옆구리에 찬 칼처럼 말이다. 치외법권의 망망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하고 그 싸움을 싸우기 위해 우리에겐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무기로 삼아야하는 것 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디론가 나아가야 하지만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 그 실패의 대가가 어떤것인지 알 수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살고있다. 사회에 내팽개쳐 진것 같은 순간에 우리는 가야할 방향을 잃어버린 양떼처럼 헤메게 된다. 나의 제주생활 초창기 또한 그런 고된 선택과 그리고 외로움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듣게 된 젠얼론의 공연에서 내가 발견한것은 모든것이 엉망진창인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로운 싸움을 지탱하자는 격려였다. 그러면 때론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라는 조그만 희망과 함께 말이다.  1집 수록곡 중 ‘way back home’ 이 다시 씁쓸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심정을 노래하지만 지금의  밝은 순간을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자는 긍정의 메시지를 슬며시 남겨놓는것 같은 마음이랄까?  젠얼론은 고독한 선택의 연속을 반복하는 나에게 ‘해적’의 삶을 받아들이고 후회나 미련없이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딛어 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요청받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젠얼론의 노래를 다시 듣고있다. 젠얼론을 처음 만난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의 감정과 오늘 내가 젠얼론을 들으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들을 이렇게 기록해 세상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것에 감사하고 부끄런 기억들을 다시 들춰내는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다. 제주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때의 나와 오늘의 나의 내면에 크게 달라진것은 없다. 여전히 매일매일 악전고투 속에서 나의 이상을 쫓아 알수 없는 미래를 향해 두려운 한발을 내딛고 있다. 젠얼론은 그런 나에게 말한다. 나의 해적선에 올라타라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질러 보라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따듯한 격려 보다는 매서운 독설로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야생성을 깨운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이 별것 아닌것 같고 내일의 걱정보다는 오늘을 충만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린 나만의 해적선에 올라 그와 함께 떠날 항해가 기다려진다. 그렇게 젠얼론의 2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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