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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heem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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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명

다시 제주, 나의 제주(2021)

어디 어디 출신의 누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금의환향하는 이야기는 요즘 정서에는 조금 올드하게 느껴진다. 성공이라고 하는 단어 안에 사람들이 투영하는 가치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기 때문에 개천에 난 용을 그저 우러러보는 시대는 분명 지나 버린 것 같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전형적 성공 서사로 설명하기 적합한 인물이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오페라 무대를 본 적도 없는 제주출신의 소녀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오페라 가수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이나라, 저나라 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녀가 자꾸 고향 섬 제주를 찾는다. 금의환향은 이미 충분히 받았고, 제주를 홍보하는 이런저런 자리에도 부름을 받아 이 정도면 됐다 싶을 정도로 활동했는데도 말이다. 연주활동뿐만 아니라  제주 4.3의 아픔을 다룬 오페라’순이삼촌’ 창작 활동과 같이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야 가능한 프로젝트도 참여하고 있다. 오늘, 제주아트센터에서 베르디 서거 12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 리허설이 시작하기 전 잠깐 짬을 낸 소프라노 강혜명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예정되어 있던 스위스 공연이 코로나 19로 캔슬되었다. 5월에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 ‘아이다’의 주연을 맡았고, 이런저런 콘서트를 진행하다가 창작오페라’순이삼촌’ 연출/총감독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여순사건을 주제로 한 1948 침묵의 연출 및 주연을 맡았다. 최근에는 호남오페라단과 함께 전주소리문화의 전당에서 ‘나비부인’ 공연을 마치고 제주에 내려와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길었던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 궁금하다. 유학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이태리 로마에서 4~5년 정도 있다가 그 이후에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예술인이 되겠다는 꿈을 꿔본 적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했었던 기억이다. 우연찮게 정명훈 선생님과 함께하는 무대의 오디션에 선발되면서 성악가로서 제대로 된 오페라 무대를 경험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좋은 기회들이 꾸준히 이어져 왔던 것 같다.

계속 오페라 전문 가수를 꿈꿨던 건가 그렇지 않다. 제가 제주도에서 처음 성악을 공부할 때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오페라 공연을 본 적이 없다. 오페라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성악가가 되길 꿈꿨었다.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주변에 너무 노래를 잘하는 선배들과 친구들이 많았기에 유학생활에 나에게 성악가로서의 성공을 담보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가 하는 이 공부, 내가 가는 이 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던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유학생활 동안 그 길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이 알게 되었던 것 같은지 궁금하다 성과가 남들보다 빨랐던 편인 것 같다. 유학간지 3년째 데뷔를 하게 되었다. 우연찮은 기회에 국제무대에 데뷔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해외 데뷔 20주년을 2년 뒤에 맞게 된다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음악가 집안 출신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던 것 같다 KBS 어린이 합창단부터 여러 콩쿠르에 입상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인터뷰에서는 잘 안 실어주더라. 저는 정말 남들이 저에게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노래를 더욱 잘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던 것 같다. 내가 노래를 잘하는 것 때문에 주변에서 기뻐하는 모습이 좋았던 것 같다. 그들을 기뻐하게 하기 위해 노래를 더 잘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순탄해 보이는 경력이라고 해야 할까? 어렵거나 힘든 적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전 지금까지 노래하면서 힘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왜 노래하면서 힘들어야 하지? 노래하면서 힘든 것 정도는 감수할 만큼 기쁨이 너무 컸기에 힘들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 같다. 노래하면서 힘든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내가 예술가로서 음악가로서 성숙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을 이겨냈던 것에 기쁨을 느끼는 편이다. 

모든 부분에 명암이 존재하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실패와 절망의 순간은 굳이 뽑자면 결혼을 못한 것? 아이가 없는 것?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원하신다면 정말 밤을 새워야 하는데.. 제주에서 활동하는 여러 이유 중에는 어린 강혜명이 느꼈던 상처들도 있다. 어릴 적 나에게 남겨진 상처들을 끌어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내 시간을 쪼개고, 더 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굳이 이곳에서 일을 하는 이유는 인간 강혜명을 완성시키고 좀 더 안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음악 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 있다면 굉장히 많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조금 다르다. 내가 성악가로서 이제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쌓였던 것들이 지금 제주에서 활동하는 것들에 잘 녹아들어 져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창작한 오페라, 그리고 과거사의 비극을 다루는 등. 내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그 아픔을 조명하는 이 일들 때문에 지금 이 시점이 가장 보람되고 기쁘다. 

언급했던 4.3 사건 이외에도 제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는가 어릴 적 해외에서 데뷔하면서 주목받았던 경력 때문에 제주도에서 이런저런 상도 주셨고 홍보대사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솔직히 나는 내 것을 열심히 할 뿐인데 왜 자꾸 제주에서 자꾸 상을 주고 잘한다고 칭찬을 하시지?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스스로 조금 더 성숙해지면서 내가 제주에서 받은 사랑을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공연을 하면 나의 가족들이 모두 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물론 활동을 하면서 제주를 오며 가며 공연을 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시간적으로 힘든 일이다. 제주아트센터 개관공연 당시 3박 4일 일정으로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뿐만아니라, 제주도는 굉장히 저에게 맹목적인 곳이기도 하다. 그 어떤 가치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려운. 그냥 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내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뿐인데 칭찬해주셨던 제주도민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멕시코에서 열렸던 오페라 공연에 저를 찾은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잡지의 대표님이 저에게 “제주도가 과연 강혜명 씨에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강혜명 씨 보다 더 유명한 소프라노가 우리나라에 많다. 우린 그 사람들의 고향을 모른다. 하지만 강혜명은 제주라는 이미지를 자꾸 떠오르게 한다. 지역색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당신의 커리어에 좋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주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며 나는 그저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전성기에 고향에서 활동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소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한 가지 있다. 제주도가 음악의 불모지라는 이야기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오페라가 어렵다고 얘기하는 순간 오페라가 어려운 음악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제주도가 불모지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제주도는 음악과 문화를 모르는 깡촌이 돼버린다. 제주 출신 강혜명을 자꾸 음악의 불모지인 제주 출신에서 성공한 소프라노로 스토리를 만들려고 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국립음대도 있고 공연장도 있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진다. 오늘 연주할 예정인 제주아트센터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 이상 예술가 스스로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페라에 대한 대중의 거리감, 부담감이 대중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오페라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오페라는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깊이를 더해간다면, 아무리 급변하는 현대사 회지만 그 안에 음악이 갖고 있는 힘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물론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본질을 떠나서는 안될 것이다. 오페라가 너무 길고 재미가 없다고, 무대를 짓는데 돈도 많이 들고 타협하면 안 될 것 같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차별성으로 어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페라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멕시코에서 공연할 때 어린 친구들이 줄을 서서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 뭐랄까? 저변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클래식이 가지고 있는 음악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그 공연에서 내가 불렀던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노래가 멕시코 언론사 스무 곳에 보도가 되었는데 그 뉴스 제목이 ‘통일을 노래하는 한국의 오페라 가수’였다. 그 기사들이 화제가 되어서  주 멕시코 한국 대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대사님이 나에게 당신이 우리가 3년 동안 했던 일을 단 하루 만에 해냈다고 하더라. 우리는 문화예술의 힘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클래식은 대중적이지 못하고 어필하기 어렵다고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작곡가 문효진 님과 함께한 ‘제주 아리아’라는 곡에 작사, 노래로 참여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이런 창작 활동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뮤지컬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이유를  번안곡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페라 가사를 한국어로 옮기면 굉장히 어색하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 오페라에 관심이 많다. 크던 작던 다양한 창작오페라를 만들어야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그렇게 오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대중이 자연스럽게 고전 오페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도 창작에 관심이 많다. 음악을 하고 오페라를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극 혹은 언급하셨던 싱글 형태로 다양하게 풀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여성으로서 음악활동을 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없었을까? 음악가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결정들을 내리는데 중요한 지침이 있다면 저는 선택을 신중하지만 결정을 빨리 내리는 편이다. 선택에 대한 리스크를 감당할 용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용기가 중요한 것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이기에 그것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 해외 오페라 무대에 소프라노로 무대에 홀로 선다는 것은 나 이외에 모두 해외 뮤지션과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이태리 말로 모든 가사를 완벽하게 숙지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내가 공연하는 나라의 말로 다시 번역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그 사람들이 나를 불러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모든 과정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그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기뻤었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려면 충분히 연습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고통스러울 지라도. 하지만 그것이 고통스럽다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의 길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힘들 때 웃어야 진짜 강자라는 말처럼 말이다. 

소프라노 강혜명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전한다면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요즘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내가 자꾸 다른 일을 벌인다고 생각하면서 아쉬워하시기도 한다. 나는 소프라노 강혜명이 음악인 그리고 예술인 강혜명으로 더욱 깊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소프라노 강혜명으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 그런 예술인이 되도록 하겠다. 

인터뷰글 유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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