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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NIN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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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홍

소규모의 삶, 소규모의 음악(2020)

2005~2010년 사이  한국의 인디음악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 대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음악을 들어봤을 것이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1집은 인디씬에서는 알아주는 데뷔 앨범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입소문이 났는지 영어로 가사를 쓴 한국 인디음악을 잘 틀어주지 않는다는 까다로운 선곡으로 유명한 고 신해철 씨의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1집 앨범 중 몇 곡이 방송을 탔다고 한다. 그렇게 유명해진 몇몇 곡들은 지금도 음악성을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그 방송을 계기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 같다고 김민홍 씨는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김태희 씨가 출연하는 삼성 올림푸스 카메라 광고의 배경음악으로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곡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 티비 광고에 사용되었던 음악들과 그 여파를 생각해보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데뷔 이후 한동안 그 여파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된다.  초창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과거를 되짚어보며 출발한 인터뷰 첫 질문에 대한 김민홍 씨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다.  그는 “저희가 그렇게 유명했었나요?”라고 웃어넘기면서 몇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황당하기도 하고 농담 같이 들렸을 첫 질문을 던진 이유가 있다. 앞서 몇 차례 고백했듯이, 난 한국 인디음악 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터뷰 진행을 부탁받고 뒤늦은 숙제처럼 내가 잘 몰랐던 밴드의 음악을 찾아 듣고, 그들의 발자취를 거꾸로 쫓아가야 했다. 그렇게 그들의 발자취를 인터넷 검색에 주로 의존해서 뒤쫓게 되는데,구글에 검색을 하면 바로 튀어나오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나무 위키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인디 밴드. 2005~2010년경 큰 인기를 끌었다. 멤버는 두 명이며, 2004년 데뷔를 하였다. 2006년, SBS 가요대전 인디밴드상과 제3회 한국 대중음악상 신인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심플하기 그지없는 설명이기도 하고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남겨져 있는 밴드라는 느낌을 풍기는 짤막한 글이다. 이 글을 보자마자 궁금증이 생겼다. 나무 위키에서 기억해줄 만한 큰 인기라는 건 어떤 것인가?  웹서핑을 통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팬을 자처하는 블로거들의 글도 꽤나 찾아 읽어볼 수 있었는데  찐(?) 무명인 나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창작물이 대중과 시대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음악성을 겸비하고 있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밴드들은 대개는 그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음악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일정 정도의 새로움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밴드의 음악 정체성을 공고히 쌓아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는 여타 밴드와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1집의 성공은 깡그리 잊어버린 것처럼 누구도 그들에게 기대하지 않을 법한 새로운 음악으로, 때로는 새로운 얼굴과 함께 나타났다.  나는 특히나 2집 앨범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에 대해 궁금했다. 전작의 성공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인지 궁금했다. 나의 질문에 김민홍 씨는 ‘2집은 뽕끼를 뺀 트로트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앨범에서 전혀 트로트의 향기를 느낄 수 없었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창작자의 설명을 들으니 2집 앨범을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 이후에도 5집까지 발매된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정규 앨범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선보인 그들의 음악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갈지자걸음이다. 글로 표현하기 정말 어려운 밴드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만의 색깔로 감지할 수 있는 커다란 줄기 이외의 어떤 것도 다시 반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어떤 앨범에서는 담담한 포크 듀오 같은가 하면 어떤 앨범은 꽤나 코어 한 전자음악단처럼 느껴진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1집부터 대다수의 곡들을 믹스할 만큼 사운드에 조예가 깊은 김민홍 씨의 실험 편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앨범에 담긴 다양한 소리의 질감에 놀라게 된다. 여행길에서 담아낸 거친 녹음들, 빠른 동작으로 그린 스케치 같은 곡들도 거리낌 없이 담아낸다. 매 앨범마다 새 옷을 갈아입듯이 다양한 실험들로 어느 한 곳에 머무르는 법 없이 그들은 꾸준히 변해왔다. 

앨범 사이사이의 그런 음악적 간극을 대중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심지어 무대에 뭔가를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었어요.” 라며 김민홍 씨는 웃는다. “여행하며 음악을 만드는 콘셉트로 제작하려 했던 앨범은 회사에서 돈을 대주지 않아서 팬들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겨우 만들 수 있었어요. 그나마 그 앨범이 잘돼서 다행이에요.”  

그러게나 말이다. 김민홍 씨는 거침이 없었다. 분명 그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대중에게 더 어필하고 잘 팔릴만한 곡을 만들 수 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1집에서 유명해진 몇몇 곡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2집을 만들어볼 생각은 없었던 걸까? 분명 그들이 소속되어 있던 레이블 사람들은 지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여러 가지 많은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그리고 김민홍 씨의 음악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특징을 꼽아보자면  짧은 아포리즘 적인 가사와 선형적 다이내믹이 드러나지 않는 멜로디이다. 아포리즘이란 어떤 체험적인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문장으로 쓰는 글을 의미한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음악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체험적으로 경험한 어떤 감정을 진리에 부합되건 부합되지 안 건 간에 아주 간결하게 정제해서 드러낸다. 가사에 멋을 부릴 공간마저 없을 만큼 단순 명료하다. 그 가사를 담는 멜로디도 소박하다. 인터뷰 날 들었던 곡 중 하나도 기본적으로는 코드 두 개로 만들어진 곡이었다. 나는 그가 왜 다이내믹이 있는 기성곡 같은 음악을 만들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런 음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닌데,  뭐 나는 그런 음악이 내 옷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간단하게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노래는 코드를 몰라도 만들 수 있고 너의 이야기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작업하는 편이에요. 간단한 멜로디와 이야기를 간단한 코드 진행에 올리는 것이 좋고,  단음 악기를 좋아하고 선율 두 개가 흘러가는 정도의 느낌이면 만족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음악을 복잡하고 꽉차게 만드는 것은 뽐내고 싶은 기술이라서 매력적으로 보인다.  간단하고 적나라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선택하기 어렵다. 누구나 내가 만든 창작물에 멋진 옷을 입혀 한껏 뽐낼 수 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간단하고 적나라한 노래는 어쩌면 내 알몸을 그대로 드러내 놓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심지어 그는 요즘 단선율의 매력 때문에 기타보다는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것이 좋아 베이스를 열심히 치고 있다고 한다. 화성을 연주하는 기타마저도 복잡한듯해 더 단순한 악기가 끌린다니 김민홍 씨는 참 별난 사람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더 좋은 것을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과는 꾸준하게 반대로 걷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음압전쟁(Loudness War)라 부를 만큼 너나 나나 할것 없이 음량을 지나치게 키워 빈 공간 하나 없이 사운드를 채우는게 대세인 요즘 세상과도 그는 반대로 걷고 있다. 돈 때문에 음악을 연주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는 그의 말처럼 나도 그런 삶에 염증을 느끼고 서울을 떠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음악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습성을 못 버리고 있었던 터라 그의 말에 움찔하게 된다. 채울수록 더 부족해 보이는 것같이 느껴졌던 나의 음악적 고민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극제가 된다. 더 버릴것은 없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슬럼프는 아니지만 음악을 꽤나 오랫동안 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작업보다는 혼자만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풀고는 있었지만 음악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긴 힘들어요.  그냥 나는 꿈도 희망도 목표도 없이 그저 음악을 하는 그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 좋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는 그런 행위보다는 순수하게 음악만 즐기는 그 순간이 좋아요.  그래도 관객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욕심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요즘의 상황이 좋아요.”   

음악을 순수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어떤 배우는 자기가 가장 좋은 연기를 할 때는 가장 배고프고 돈이 궁할 때라고 말했다. 음악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순수성은 돈과는 별개의 문제일까? 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다른 사람들은? 

장르마다 개인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나는 그 ‘어떤 배우’의 입장도 김민홍 씨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어릴 적 어른들이 음악은 취미로 하는 거라고 하던 말이 듣기 싫었지만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세상에는 무가치 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결국 내가 좋아했던 일이 나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도 알게 된다. 나의 순수한 열정이 싸구려 취급당하고 그로 인해 삶이 제대로 살아지지 않는 순간  누군가는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지쳐서 음악을 잠시 떠나기도 한다. 김민홍 씨도 돈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상황에 지쳐있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그는 제주에서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딸아이를 키우고 소소하게 음악을 하고 있다.  

김민홍 씨의 삶과 겹쳐있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과거 그리고 그의 개인적 활동을 돌아보니 음악을 참 꾸준하게 , 하고 싶은 대로, 그리고  꾸밈없이 해온 사람이지 싶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던 만큼 어쩌면 대중이 그들에게 바라는 모습과는 꾸준히 멀어져 왔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것처럼 보여진다. 그 역시 제주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음악만큼은 내 모습이 아닌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을 하고 싶지 않다는 김민홍 씨의 생각이 인터뷰 내내 전해졌다. 나에게는 쉽지 않았을 선택을 그는 너무나도 쉽게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고집이라기보다는 뻔한 것들을 체질적으로 못 견뎌하는 김민홍 씨의 성격 탓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에서는 그렇게 어쿠스틱 한 음악을 찾게 되더니 막상 제주에 오니 일렉트로닉 한 음악을 찾아 듣게 된다는 김민홍 씨의 말에 참 그답다고 생각했다. 김민홍 씨는 그날 우리에게 두곡을 들려주었다. 두곡 모두 어린 딸아이의 아빠로서 경험한 그의 감정을 간결하게 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서귀포에서 아무런 욕심 없이 일주일마다 한 번씩 만나는 밴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이가 조금 더 들면 괜찮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김민홍 씨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뮤지션으로서의 선택, 음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뮤지션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에게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고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되는 인터뷰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삶이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그의 바람처럼 세월이 흘러 스스로 괜찮은 음악이라고 자부할만한 작품으로 잠시 멈춰진듯 보이는 그의 발걸음이 세상을 다시 여행하길 바란다.  그리고 가끔 서귀포에 사는 그와 함께 재미난 술자리와 잼 세션을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러 찾아가게 될 것 같다.

인터뷰글 유성재  사진 한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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