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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jungk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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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근

사람을 이야기로, 이야기를 사진으로, 사진을 작품으로(2020)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들어볼까요 작은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4학년 6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이 사진을 취미로 하셨어요. 그게 멋있어 보였나 봐요. 배우고 싶다 생각했는데, 서점에서 <사진예술>이라는 잡지를 봤어요. 그 잡지를 봤더니 사진학과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걸 사들고 가서 아버지께 사진학과를 가고 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좀 알아보시곤 그건 취미로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전 사진배워서 돈 벌고 싶다고 졸랐죠. 결국 아버지가 서울을 데리고 가셔서 학원을 등록해 주셨어요. 그때 학원을 다니면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학을 가고 작업을 하게 되신 건가요 요즘 사진학과 나온 친구들 보면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 없더라고요. 지방대 나온 작가들을 찾아봤더니 구성수 작가랑 박진영 작가가 있었어요. 찾아갔더니 술을 사주셨어요. 그 선배들이 지금도 작업을 해주는 게 고맙죠. 지금 사진학과 보면 작업을 하려는 친구들이 거의 없죠.

질문을 바꿔야겠네요. 사진작가가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사진 찍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더라고요. 그게 결과물로 이어지는데,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요. 제주에 와서 고승욱 작가를 만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됐어요. 작가를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달까요. 저랑 잘 맞는 방법을 찾은 거죠. 제가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어른들 만나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거든요. 이야기를 듣는 작업을 하는거죠. 해녀 작업을 할 때도 그렇고 4.3작업을 할 때도 그렇고요. 아직까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죠. 

제주는 어떻게 오시게 됐어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다들 제주로 오게 된 어떤 계기를 물어보시는데, 사실 저는 아내가 제주에서 박사논문을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얼떨결에 따라 내려오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바다에 나가면 해녀가 늘 있는 줄 알았죠. 이젠 물질하는 날이 일 년에 100일이 채 안 된다는 걸 알지만요. 제 앞에 해녀를 잘 찍은 선배들이 있어요. 김흥구 작가나 이성은 작가같은 선배들 사진 보면서, 아주 잘 찍어놓은 사진이 있는데 내가 또 찍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도 계속 보니까 제가 다른 방식으로 찍을 수 있는 방법이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해녀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다음에 제주에 온 작가님 자신에 빗대어 시작한 작업이 <입도조>죠 친구들이랑 제주도에서 모여 술을 마시고 있다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맥락에서 <입도조>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 친구들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직도 진행형인 이야기고요. 아이가 있어도 정착을 못 하고 떠돌아 다니고, 제주에 집을 갖는 게 꿈인 사람이 되었어요.

이제 또 새로 시작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4.3 유가족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4.3 유가족은 4.3 70주년 행사 때 시작한 초상사진 찍어드리는 아르바이트에서 시작합니다. 그때 한 300분의 초상사진을 찍는 일을 했는데요. 제가 묻지 않아도 그분들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자리가 마련이 된 거죠. 4.3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4.3평화공원측에 이 작업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얼마든지 써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한번은 한 어르신 댁에 노트북을 두고 왔는데, 며칠간 못 찾아갔더니 간첩이라는 소문이 났더라고요. 할머니 따님이 전화가 오셨어요. 빨리 노트북 찾아가시라고 연락이 와서, 다시 노트북 찾으러 들른 할머니댁에서 놀고 있는데, 간첩이라고 말씀하신 할아버지께서 머쓱해 하시면서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마을에 아직도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상황들이 남아있다는 게 씁쓸하더라고요. 이념의 풍경같기도 하고요. 정작 마을 분들은 이념이라는 단어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말이죠. 그리고 진상규명보고서를 읽다 보니까, 지금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4번째 시리즈로 기억의 방법을 찍고 있어요. 마무리 삼아 기억의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내년쯤엔 책으로 마무리해 보려고 하고요.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지속적으로 출판물 형식으로 하시는 것 같아요 우연치않게 첫 책이 출판사에서 나와서 정리가 아주 잘 됐어요. 그때 책이 나오지 않았으면 해녀시리즈는 정리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잠녀>라는 책이 열화당에서 나왔는데요. 사진은 예술이 아닌데 예술이 되려고 하다 보니까 정리를 하거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이 더해지거나 사진이 시리즈가 되어 책이 나왔을 때 훨씬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입도조>도 그랬고요. 전시는 힘도 많이 들고 소모적인 느낌인데 책은 훨씬 남는 느낌이 있어요. 어른들에게 기분좋은 4.3책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어른들이 받아보고 기분 좋은 책이 없으셨대요. 그분들이 진짜 받아보시고 좋아하실만한 전시나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지난번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도 꾸렸고요. 실제로 작품에 나온 어르신들이 좋아하셨어요.

초상사진이 기록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가 가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미술시장으로의 진입이 어렵다거나 하는 한계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죠. 초상사진은 미술관이 아니면 구입해주지 않죠. 제가 작업하는 방법이 제가 본 것을 적어나가는 데서 시작하거든요. 코드들을 적어나가다 보면 결국 추상으로 끝나더라고요. 해녀도 그랬지만 4.3도 결국은 추상으로 끝날 것 같은데요. 할머니들에게 무슨 색깔 좋아하세요, 무슨 과일 좋아하세요, 라고 물으면 처음 듣는 질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이 담긴 추상화된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결국은 아르바이트를 위한 사진은 따로, 작업을 위한 사진을 따로 찍게 되는 것 같아요. 해녀 사진이 팔리지 않는 이유를 어떤 분이 알려주셨는데요. 해녀라는 직업 자체가 천한 직업으로 인식이 돼서, 집에 두고 걸어서 보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서울에서는 해녀를 구입해 주시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제주에선 전혀 거래가 안돼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수트>(낡은 해녀복을 클로즈업해 찍어 화면 자체는 색면에 가깝다:편집자주)가 효자죠.

맞아요. <수트>는 초상을 추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인 것 같아요. 그러면 저도 못 들어본 질문을 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 전 노란색 좋아합니다. 원래는 파란색을 좋아했는데, 촬영하면서 노란색이 예쁘게 찍기 쉽다는 걸 알았어요. 할머니들 사진을 드리는 건 초점도 잘 맞고 배경도 노랗고 빨갛고 이런 것 드리고요. 제가 쓰는 건 초점도 좀 나가고 알록달록한 배경을 쓰고 있어요. 사람을 만나면 작가들이 대개 마음이 바빠서 아픈 질문들을 단도직입적으로 묻게 되잖아요. 안 그러면 좋겠어요. 이번에 할머니 찍은 작품이 팔려서 사인을 받으러 갔는데요. 그래도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감사했어요. 초상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슬라이드쇼가 팔렸는데, 150명에게 전화를 돌리느라 고생하기도 했고요.

초상작업은 향후에도 이어지나요 어느 날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태극기집회하시는 분이거든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아버지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더 화가 나신 것 같았어요. 태극기집회하시는 어른들을 만나고 찍으면서 뭐가 문제인가를 찾고 있는 중인데요. 각자가 생각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한 2년간 찍고 있어요. 거의 마무리가 돼서 내년쯤 소개할 것 같아요. 시대마다 그 때 나왔던 영웅들이 있더라고요. 스파이더맨이 20살이고 이승복이 작년에 환갑이더라고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의지하는 사람이 있고, 저는 제가 의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거죠. 때때마다 영웅이 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예요.

풍경사진이 언젠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봤어요. 초상이 어느 순간 풍경이 되거나 사물이 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입도조시리즈에선 인물이 지나간 풍경을 찍고, 해녀시리즈에선 해녀가 입었던 수트를 찍는 식으로요. 황폐화된 제주바다 속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그게 또 사람의 흔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요. 이번에 조명을 써서 빨간 야자수나 빨간 개나리같은 이미지를 찍고 있어요. 예쁜 이념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올해 코로나로 타격은 없으셨어요 6월까지는 좀 힘들었는데요. 아르바이트도 연말에 많이 하고 작품도 좀 팔리고 해서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낼 수 있었어요.

인터뷰글 이나연  사진 한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