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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쌍용기계

Ssangyong machine

PROFILE

정찬원 대표

장갑을 끼고 있을 때가 저는 제일 편안합니다.

기계 두 대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은 예전에 이루었지만 여전히 욕심 없이 처음의 그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로봇 태권브이도 만들 수 있을 듯 보이는 공장 안에서 오늘도 더 나은 부품을 만들기 위해 씨름한다. 일이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고 한다. 그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장갑을 벗을 날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언제 공장을, 그러니까 쌍용기계를 시작하셨어요?
화북공업지역에 온 지는 29년째고요, 한림에서 한 3년 정도 했어요. 부산이 고향이고 제주도에 온 지는 32년쯤 됩니다. 1988년 6월 제주도에 왔습니다. 처음 왔을 때 여기에 공장은 몇 개 없었습니다. 저도 1992년 11월에 와서 용접기 한 대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지금 이만큼 불어났습니다. 그 역사가 지금 공장 안에 다 있습니다. 현재 4명이 일하고 있어요.

제주도로 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오기 1년 전 친구가 제주도에 와 있었어요. 그 친구 보러 놀러 와서 한 달 여행한 뒤 이곳이 좋아서 그 이듬해에 오게 됐죠. 지금도 변함없이 제주도가 좋아요. 그리고 지금 큰애가 서른두 살인데 애들이 제주도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엊그제 제가 할아버지 됐습니다. 그러니 제주도가 더 좋죠.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는 힘들었겠어요.
무일푼으로 제주도에 왔으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었죠. 2~3년이 고비였어요. 육지에 다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했어요. 원래 부산에서도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아주 작은 가내공업을 2~3년 하다 왔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이 일이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서서히 일에 재미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주로 어떤 부품을 만드나요?
처음에는 선박에 들어가는 클러치를 자체 개발했어요. 클러치는 지금까지도 판매하고 있어요. 산업기계, 농촌에 필요한 장비 등 이것저것 다 합니다. 이제야 조금 일을 알 것 같아요. 재미도 붙고요. 저희는 일할 때 어려움이 있어요. 왜냐하면 책에도 없는 부품을 가공해야 하거든요. 그럴 때 옛날에 어깨너머로 봤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서 제작했는데 제품이 잘 나왔을 때는 보람 또한 참 큽니다.
어떤 때는 제가 놀라기도 해요. 예를 하나 들면 부품을 가공했을 때 재료비는 겨우 몇 십 원 들어갔는데, 완성했을 때 100만 원 정도의 이익을 본 적도 있어요. 그때는 돈도 돈이지만 저도 정말 놀랐습니다. 2002년에 산‧학‧연 컨소시엄에서 발명 특허를 낸 것이 있어요. 배에서 사용하는 피티오(PTO)라는 클러치예요. 제주특별자치도 후원으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일주일 동안 전시했어요.

공장 안에서만 일하시나요?
예전에는 해상 기계 제작을 많이 해서 제주도 항구와 포구는 다 다녔어요. 아주 작은 배부터 큰 배까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10년 전부터는 공장 안에서만 작업합니다. 제 억양도 그렇고, 전 육지 사람이잖아요. 옛날에는 육지 사람이 살기에 제주도가 조금 안 좋았어요. 그런데 배에서 일을 끝내고 한두 분 만나면 오히려 엄청나게 예우해 주세요. 지금은 그런 맛에 삽니다.

공장 안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있나요?
남들이 볼 때는 다른 공간과 똑같아 보이겠지만 저에게는 특별한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개방된 공간이고 딱히 연구실은 아니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옛날 생각도 나고 영감도 잘 떠올라요.

몇 시에 출근해 몇 시에 퇴근하세요?
보통 아침 6시 정도 출근하고,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저는 연장 작업을 해요. 평균 16시간 이상 일해요. 쉬는 날에 일을 더 많이 하는 편입니다. 쉬는 날에는 공장 문을 다 닫아요. 그래서 조용하니까 작업 능률도 오르고 해서 참 좋습니다. 시간이 금방 흘러갑니다.

너무 바빠 보이세요.
제주도 동쪽, 서쪽, 남쪽 구석구석에 있는 농어촌 식품공장, 비료공장 같은 회사에서 매일 급한 주문만 들어오기 때문에 새벽에 나와도 언제 시간이 갔는지 모르게 금방 시간이 가 버립니다. 여기 있는 이것도 시골집의 외등 같은 건데 한림 금왕에서 가져왔어요. 오래된 것인데 아까워서 원래대로 복원했으면 해서 가져오셨어요. 그쪽에서는 고칠 수 없으니까 저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이건 용접도 해야 합니다. 지금 복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오래돼 보여요.
요즘 나오는 것에 비하면 이런 옛날 제품은 재료가 참 좋아요. 이건 재료가 인천동이거든요. 에밀레종, 절에 있는 종 같은 걸 만드는 재료예요. 우리는 쇠를 조금 알다 보니 이런 좋은 쇠를 보면 아까우니 살려 보자는 마음이 들어요.

고치고 나면 보람을 느끼시겠어요.
모두 보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기계를 수리하러 온 사람이 있었어요. 고려대 법대 나온 분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처가가 제주도라 이곳으로 왔어요. 와서 보니 처가에서는 도라지 농사를 하고 있었어요. 도라지는 모두 커터칼로 가공하거든요. 그런데 이 분이 어느 날 문득 커터칼 대신 기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기계 쪽으로는 지식이 없다 보니 혼자서 고생을 상당히 많이 했어요. 부분 부분을 저희에게 맡겨서 해 줬는데 결국 다 들고 와서 새로 만들어 준 적이 있어요. 그 후 그분은 참 잘되셨어요.

다양한 손님이 오실 것 같고 오랜 인연도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 돌아가신 제주대학교 문기선 교수님과는 아주 오래전부터 같이 작업했어요. 26년, 27년 전부터 조형물 등을 많이 만들어 드렸어요. 교수님이 직접 조형물을 만들기도 하셨지만 맡기는 부분도 있었어요. 교래리에 문 교수님 작업장이 있었는데 상당히 컸어요. 이것저것 많았어요. 과거 제주산업정보대학이나 제주대학교 이런 곳과 기술혁신 컨소시엄 같은 것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교수님들이 우리 공장에 많이 옵니다. 학생들도 오고요.

못 만드는 것 없이 다 만들 수 있겠어요.
다른 집에 없는 장비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요. 안쪽에는 특수 기계가 있어요. 그래도 사실상 대부분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장비가 많아요. CNC나 머신센터같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다 해 줄 것 같지만 의외로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경험이 없고 어느 정도 숙달되지 않으면 기계를 다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많은 기계 중 가장 아끼는 기계가 있나요?
모두 제가 아끼는 기계입니다. 그런데 안쪽에 가면 골동품이 몇 개 있어요. 그 장비들은 옛날 기계라 지금 사용하기에는 속도가 좀 더뎌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복원해 사용하려고 보관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하고 싶으세요?
현재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보았습니다. 기계 두 대 갖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작은 기계 두 대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가 있거든요. 지금은 생산성이 떨어지니까 두 대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지금도 바라는 것은 똑같습니다. 내년이면 60세가 돼요. 아주 작은 차에 기계 한두 대 싣고 낙후된 곳이나 어려운 분들을 찾아가 용접도 해 주고 가공도 해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바빠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갈수록 더 바빠져요. 일하는 재미도 더 붙고요. 제주도민들이 저를 놔주지 않아요. 일요일에 오름이라도 가려고 해도 전화가 와서 공장에 나와야 합니다.

운동이나 여행할 시간도 없으시겠어요.
전에는 스쿠버다이빙도 십여 년 하고, 다른 운동도 조금씩 했었어요. 그런데 운동 안 해도 여기서 하루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일을 합니다. 제주도에 와서 32년 됐는데 외국에는 한 번도 못 나가 봤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볼 것이 있었는데 그것보다 우리나라의 옛것을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영감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안 가도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으셨어요?
예를 들면 저쪽에 새끼줄을 꼬는 기계가 있어요. 원래 옛날에 새끼줄 꼬는 기계는 가늘게 꼬는 기계였는데, 민속촌에서 3배, 4배 정도 굵은 새끼줄을 꼬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옛날 기계를 한 대 구해 보자. 거기에서 아이디를 찾자’ 하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연구를 하려면 예산이나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옛날 기계 한 대를 구입했어요. 이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만들고 있어요. 시간에 여유를 갖고 하는 작업이라 2020년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엄청난 부분이 그 안에 들어 있어요. 옛날 선조들이 했던 부분을 무시하고 넘어가면 엄청나게 후회할 뻔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컴퓨터 등 나아진 장비로 일을 하잖아요. 그러나 한 번쯤 옛날 장비나 기계를 돌아보면 거기에 엄청난 지혜가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저는 40년 이상 이 일을 했습니다만 지금에야 재미가 붙고 그런 걸 알겠어요.

하셨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셔야겠어요.
한번은 문기선 교수님이 책을 준비해 보자 그러셨어요. 그런데 저는 40여 년간 일했어도 기록으로 남긴 게 없습니다. 기계를 만들기 위해 보통 스케치하고 나서 도면을 그려요. 그러면 그 도면을 보고 기계를 제작해요. 그런데 전 대충 스케치만 해서 기계를 제작해요. 그리고 제작이 끝나면 스케치를 폐기해 버립니다. 한 대를 만들고 나면 도면이 없어요. 이때까지 왜 그렇게 했냐 하면 도면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는 발전이 없어요. 똑같은 기계를 두 대 만든다고 해도 똑같을 수가 없어요. 기계 한 대를 만들면 그 기계는 세계에서 단 한 대뿐인 거예요. 두 번째 만들 때 약간 향상되고, 세 번째도 마찬가지고요. 도면이 있으면 만들 때마다 똑같은데, 우리 기계는 똑같지 않아요.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만들어 오고 있는 것도 도면이 없어요. 머릿속에서 치수를 생각해요. 그래도 틀리지는 않아요.

주변 공장들 간 교류는 있나요?
철공소가 이 근처에 서너 개 있는데 알고는 있지만 왕래는 없습니다. 32년째 모임에는 나가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퇴근 후 아는 분들과 소주 한잔하기 때문에 아주 좋습니다.

공장이 대표님께는 어떤 의미일까요?
전부죠. 전부를 여기 다 걸었죠. 어떤 사람은 경기가 좋아지고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회의도 느끼고 싫증도 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다른 직업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고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더 편한 쪽으로 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갈수록 여기가 더 편합니다. 작업복도 그대로예요. 장갑을 끼고 있을 때가 저는 제일 편안합니다. 제가 일을 오래해서 손도 크거든요. 그런데 장갑을 끼면 자세가 딱 잡혀요.

옛 장인 같으세요.
그렇진 않아요. 제 아들이 둘인데 작은아들이 지금 6년째 교육도 받고 일도 하고 있어요. 시간이 가 봐야 알겠지만, 제가 못하게 되면 이 일을 아들이 이어 가도록 할 생각입니다

글: 김연주, 사진: 한용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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