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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NE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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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능희

꿈과 희망이라는 마법, 오페라(2021)

오능희라는 한 개인을 수식하는 명칭은 여러 개다. 소프라노 오능희, 한국음악협회 제주특별자치도회 지부장, 제주오페라연구소 대표와 같이 여러 개의 호칭을 가진 그녀를 그녀의 두 아이는 엄마로 부를 것이다. 연주활동 역시 왕성하다. 제주에서 열리는 오페라 무대에서 그녀의 이름은 거의 항상 찾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학교에서 후배를 양성하는 데에도 시간을 쏟고 있는 그녀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 와중에 그녀는 오늘 베르디 서거 12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 무대에서 ‘가면무도회’ 제주 초연 무대에 설 예정이다. 진정 욕심쟁이 이면서 동시에 웬만한 집념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스케줄들을 소화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제주에서 가장 바쁜 음악인 중 한 명이라고 생각되는 소프라노 오능희의 발길을 잠시 붙잡아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소회와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올 한 해 활동을 소개해달라 작년까지 성악 협회장을 맡았었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을 맡고 있다. 또 제주오페라연구소에서 소장을 맡고 있다. 연주활동도 물론 활발하게 하는 중이다. 

성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목소리도 다른 아이들보다 크고 노래도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본격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 저의 소리를 좋아해 주시고 성악을 해보라고 권하셨던 것이 계기가 된 것 같다. 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부모님들은 제가 선생님이 되길 바랬다. 성악이라고 하면 레슨비부터 활동비 등 돈도 많이 들고 여러 어려움을 생각하셨기에 부모님은 제가 성악을 하는 것에 반대를 하셨었다.  

어찌 됐든 성악의 길로 입문해서 유학까지 가게 되었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유학생활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음악으로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던 건가 제주대 졸업 즈음에 비엔나에서 오신 선생님이 저에게 유럽에서 충분히 활동을 할 수 있는 친구라고 인정을 해주셨다. 당시 학교 교수님들도 저희 아버님에게 찾아오셔서 능희는 유럽으로 가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요청도 하고 하셨었다. 저희 가족들도 조금 응원하는 분위기가 생기다 보니 유학을 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제 목소리가 조금은 희귀하고 소수가 가지고 있는 소리라는 평가가 있었던 것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저로서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고 기회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유학시절 말미에 현지 활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어떤 심정이었나 미련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아버님이 자꾸 쓰러지시면서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이었고 가족을 잃을 상황에서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을 잃을 때 혹여나 그 자리에 내가 없으면 너무 슬프겠다는 생각. 그리고 아버지와 내가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아버지가 당신의 건강문제와 더불어 나의 귀국을 종용했을 때 그것을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게 저에게 남은 기간은 6개월 정도였고, 그 기간 동안 콩쿠르에도 출전하고 하면서 마지막 도전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 6개월 동안 음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었다. 그래서 빨리 귀국을 하자고 결심했고 아버님의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혹시 여전히 본고장에서의 활동을 꿈꾸나 지금도 그렇다. 그때 당시에도 귀국 후 1년이 채 안돼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당시 목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오스트리아에서의 제안이 무산되었지만 여전히 당시의 선택이 조금 아쉬울 때도 솔직히 있다.

소프라노 오능희는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제주 음악계를 이끌어가는 역할, 연주활동 등 매우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 같다 가정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들로 인해 스스로가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서도 후회를 왜 안 했겠나? 싱글 성악가로 활동하는 것도 매력적인 것 같다. 하지만 여자로서, 엄마로서 깊이 있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엄마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역할에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부호는 여전히 존재하고 다른 삶을 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엄마로서 내가 좀 더 강해졌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게 된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렸던 선택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지만, 장점은 더욱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주가 꿈을 포기해야 했던  상징적 공간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제주에서 활동하면서 그런 것들이 조금씩 변화되었을까 그렇다. 특히나 오페라 분야는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는 스스로를 오페라 가수라고 생각하고 오페라에 대한 갈망이 큰 사람이다. 그래서 제주 오페라 연구소를 만들기도 했다. 제주의 클래식 유학 1세대로 스스로를 분류하는데, 우리 세대의 활동으로 인해 제주의 오페라 저변 확대에 조금은 기여한 것 같다. 비단 나의 연주 활동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을 위한 연주무대도 마련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어느 정도는 이곳에서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한다. 때로는 나의 활동에 대한 주위의 시선들이나 평가가 야박하거나 부정적일 때도 있지만, 저는 할 수 있든 없든 좀 지켜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어느덧 제주오페라연구소가 7년 차고,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활동으로 인한 더 좋은 변화들을 기대하고 있다. 

창작오페라를 만들거나 예술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특별한 소재를 발견한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제주도는 정말 창작의 소재가 무궁무진한 곳이다. 1만 8 천신을 모시던 이야기부터, 독특한 자연, 돌과 바람과 여자와 같은 이야기들. 그래서 내년에 제주의 역사적 인물을 모티브로 창작 오페라를 만들어 보려는 구상을 하고 있다. 

그동안의 바쁘게 활동해왔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소회는 어떠한가 매년 오페라가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제주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창작오페라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페라에 대한 시야들이 많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기여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둘째 아이를 낳고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전성기인데 지금 활동해야 하는데 무대가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무대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만나서 무대를 만들어 달라고, 기회를 달라고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단체를 만들어야 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이제는 제주 이곳저곳에서 오페라 무대가 활성화된 것이 확실히 느껴지고 어느 정도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의 무대에 서고자 하는 동기가 이런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했는데, 일반 대중들이 소프라노 오능희의 개인적 동기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게 될까 제가 오페라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지 전공자라 서가 아니다. 연극, 시, 드라마, 영화 같은 장르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정서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적 정서가 없는 예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페라는 음악의 기본적 정서와 스토리가 만나는 최상의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크린의 시대라는 것, 인공지능의 시대, 기계화 시대가 도래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감정을 깊숙이 만져줄 수 있는 것은 오페라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미래에 더욱 필요한 장르가 되지 않을까?

제주에서 후배들의 활동 지원이나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고 들었다. 단순 연주활동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깊은 고민이 있을텐데 결국은 무대를 계속 만들어 내는 것에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년에는 마스터클래스 같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해볼 생각도 있지만 결국은 무대가 답이다. 본인 스스로 느껴야 하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고 이런 전통을 지속적으로 지켜내고 싶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순간이나 고민들이 있었을 것 같다 체계화되어있지 않다는 것 때문에 늘 지친다. 하나부터 열까지 해내야 하는 것. 가정, 엄마, 기획, 연주와 같은 일을 해내고 평가하는 데 있어서 희망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 일을 놓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르기 어렵지만 무대를 만들고 무대에 서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되고 더 좋은 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꿈이 생기게 된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서 그런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제2의 오능희를 꿈꾸는 후배들이 존재할 것 같다.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까 제주의 무대는 경쟁이 부족하다. 경쟁이 부족하다 보니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열심히 준비하고, 단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하고 보완하면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배들은 발전하고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소프라노 오능희 개인으로서 꿈꾸는 장기적 프로젝트가 있다면 나는 작품 욕심이 많다. 제주에 여전히 그랜드 한 오페라 무대를 올리는데 한계가 있다. ‘아이다’, ‘투란도트’ 같은 그랜드 오페라를 한번 꼭 제주에서 올려보고 싶은 욕심이다. 그런 무대에서 주역에 서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소프라노 오능희가 빠져있는 오페라의 매력을 간략하게 알려준다면 오페라의 매력은 간단하다. 음악의 선율이 이야기를 만나 표현되는 예술. 배역을 맡으면서 느끼는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 다혈질적인 주인공, 소박한 사람 혹은 화려한 여왕 등등 드라마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소프라노 오능희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말을 전한다면 제 좌우명은 ‘과정보다는 결과’다. 과정은 정말 힘들고 아플 수 있지만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제가 힘들게 경험해나가는 것들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

인터뷰글 유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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