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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Jon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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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욱

자연과 인간의 하모니(2020)

작가님께서 제주에 정착하신 계기가 말 때문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말의 어떠한 점에 매료되어서 이주까지 결심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동물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울에서 작업을 할 때 동물에 관한 작업을 많이 하다가 ‘복제양 돌리’가 이슈화되고 있을 때, ‘New DNA’라는 측면에서 작업을 했어요. 당시 가장 권위있는 공모전 <서울 현대 도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죠. 이후에 다른 동물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말’이라고 하는 동물이 제 시선에 들어왔어요. 결과적으로는 대학원에서도 제주 조랑말 관련해서 논문을 썼어요. ‘말’하면 제주니까요.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으로 제주에서 말을 탔을 때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말이 저를 태우고 한 바퀴 돌고 내려서 제가 고맙다고 말의 엉덩이를 쓰다듬는데 촉촉한 거예요. 저를 태우고 다니느라 땀을 흘린 것이죠.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다니면 얼마든지 다니고 기름 떨어지면 또 보충하잖아요. 생물이 나를 태우고 달려서 땀이 흠뻑 젖은 걸 보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런 묘한 에너지를 느꼈어요. 그런 것을 경험하려고 제주도에 내려왔는지도 모르겠어요. 피상적으로 작업실 안에서 말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보다 말의 고장에서 직접 경험을 해보면서 더 깊이 있게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제주로 오게 된 거죠.

말을 좋아하시게 된 계기가 말을 탔을 때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처음에는 말에서 느껴지는 선이었어요. 여타 동물들은 모두 털이 있잖아요. 말도 털은 있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들보다는 훨씬 더 라인이 극명하게 드러나죠. 말의 잔등은 산굽이처럼 휘어있고 말 둔부에서 나오는 아주 섹시하면서 절제되고 그런 선에 매력을 느꼈는데 더욱 저를 매료시킨 것은 말의 눈동자였어요. 다른 친근한 동물들과 달리 말의 눈동자는 뭔가 신성시할 수 있는, 뭔가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느낌이 있었죠. 다른 동물들보다는 저한테 더 매력적이었어요. 영롱하면서도 순한 혹은 순수한 눈동자라기보다는 약간 신화적인 눈빛, 먼 옛날 아득한 시원에서 이미 눈빛을 교환했었던 것 같은 느낌인 것 같아요.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어떤 동물이요. 

말을 소재로 오랜 시간 작업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표현 방식이나 소재, 재료 측면에서도 다양한 방식이 접목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말의 머리 부분만 표현을 하셨을 때도 있고 또 어떤 것은 귀여운 캐릭터 같기도 하고 각기가 다 다른데 말 작품에 어떠한 마음을 담았는지 궁금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실제 말의 경험, 교감을 통해 영감을 받고 작품에 표현하셨다고 했는데 내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요 작업을 하다 보면 하나로 딱 규정 지을 수는 없어요. 과거에 내가 느꼈던 말, 그리고 지금의 내가 느끼는 말은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심경의 변화에 따라 느껴지는 게 많이 다르죠. 초창기 때 느꼈던 말은 근접하기 어려운 신성성을 지닌 신비로운 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주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 진행도 하고 있고, 자식을 키우다 보니 좀 더 친화적이고 동화적이면서 해피한 말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또, 흙을 재료로 하다 보니 흙은 질료가 주는 느낌이 가볍지는 않아요. 무겁죠. 더군다나 제가 흙을 빚고 건조해서 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거의 돌덩어리가 되죠. 질료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들이 좋다가도 그게 때로는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좀 더 가볍게, 가볍게 하다가 페이퍼 콜라주라고 하는 아주 가벼운 재료도 사용해 보았어요. 가장 가벼운 질료가 종이였고 인사동에 가서 150년 된 한지, 고서적들을 구해서 작업을 하기도 했죠. 최근에 제주도립미술관에서 <99+1> 이라고 하는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은 제주의 감귤나무로 말을 빚은 것이었어요. 감귤나무가 전정이 되고 남은 가지들을 연결해서 말의 형태로 제작도 해 보았어요. 나무로도 해보고 종이로도 해보고 다른 FRP같은 재료로도 해보고 최근에는 금속으로 해 보려고 용접기를 사서 용접도 하고 있죠. 한 가지 재료를 가지고 깊이 있게 하는 것도 좋은데 어떨 때는 그때 그때 제 심경에 따라서 다른 표현들을 할 수 없을까 해서 재료와 방법들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최근 작업은 ‘생명’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인간의 형상이거든요. 어떠한 의미인가요 말 작업도 사실은 형태가 말이지 어떻게 보면 의인화된 이미지를 항상 넣으려고 했죠. 눈빛이나 형태나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면서 느꼈던 ‘해피한 말’ 작업을 했어요. 저한테는 작가로서의 창작도 있지만, 부모로서 아이를 케어하는 그런 타이밍이 된 거예요. 제가 말을 빚는 것만 수 천, 수 만 마리 했을 것 같아요. 그 때 느꼈던 희열이나 작품에 대한 열정도 좋지요. 아이를 빚을 수는 없지만 아이가 양육되는 과정에 가장 필요한 조력자로 위치하면서 하나의 객체인 인간을 바라보게 되었어요. 화분에 물을 주듯이 아이가 쑥쑥 자랄 수 있고 올바르게 자기 두 발로 설 수 있는 그런 조력자 역할도 하나의 창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에게 한 이야기가 “아빠가 지금까지 작업했던 그 어떤 순간의 희열보다도 너를 빚고 아빠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그 어떤 창작물보다도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라고요. 이 흐름이 지나가면 또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겠죠. 그래서 인간의 모습을 작업에 담게 된 겁니다.

거기에도 제주의 요소인 바람을 담고 있거든요 네. 제가 제주에서 가장 피부로 와닿은 것은 바람이었어요. 그래서 제주의 말 갈기를 통해서 흩날리는 제주의 바람을 표현하기도 했고요. 아까 보신 소년 소녀상은 바람을 맞고 있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는 형상으로 표현했어요. 코로나19 시대에 많은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그것도 하나의 바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지나가죠. 그러나 그 때 나는 어떠한 태도로 어떻게 서 있느냐 그런 부분을 담았어요. 자연을 이긴다라기 보다는 자연과 상생하면서 자연과 더불어서 꿋꿋하게 두 발로 쓰러지지 않고 설 수 있을까를 작품에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작가님의 염원이나 소망을 담은 것이겠네요. 항상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숭고함도 담고 있지만 제주의 자연적인 요소들이 같이 가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환경이 주는 영향일까요 저는 모든 물체들이 각기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에너지의 파장도 색깔도 다르고 미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모두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기운이 있는데 서로 영향을 주고 피드백 받으면서 유지하고 있을까를 생각해요. 천혜의 자연을 가진 제주는 바람 뿐만이 아니라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흙, 땅 이런 부분들이 같은 식생을 통해서 존재한다고 믿어요. 그런 부분들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듯 작품에 표출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인 환경을 배제할 수 없죠. 

앞으로의 작업도 휴먼을 주제로 꾸준히 하실 계획인가요 아마 두 대상이 어떤 접점을 이룰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독립적인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제주의 말과 제주의 바람을 앉고 우뚝 서 있는 소년과 소녀 그네들이 같이 어우러지는 또 다른 하모니를 이루지 않을까 합니다. 말을 타면 ‘인마일체’라고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낙마하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호흡을 통해서 최고의 속력으로 질주할 수 있거든요. 말과 사람이 콜라보가 되어서 어떤 표정이 나오고 어떻게 각색이 될까 그런 부분들을 고민하고 있죠.

총체적으로 보면 상생, 화합이라는 주제를 제주의 자연적인 요소를 더해서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동물과 인간이 같은 환경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삶도 매 순간 또 다른 환경과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에서 우리는 잘 어울리기도 하고 불협화음 속에서 갈등하기도 하잖아요. 지금 코로나19가 우리를 바꾸어 나간 것처럼 그것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10년 전의 인터뷰 영상을 보셨어요. 지금의 작가님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당시 작업실은 아라동에 있었거든요. 지금보다 협소한 작업실이었는데 작업하는 내용도 담고 흙이 와서 흙을 나르는 부분도 있었어요. 정말 신선하고 생생했어요. 영상을 보면서 지금보다는 10년은 더 젊었으니까 더 열정적이고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참 신선하고 새롭다는 느낌이었고 시간이 흘러서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면 조금은 유연해진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부드러워지면서 늙었다기보다는 무르익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매 순간들에 유연하게 반응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작업 또한 아마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해가지 않을까. 그렇게 비추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초창기에 제주에 와서 서울에서 작업했던 에너지와 기운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를 했을 때 지역에서 나름대로 쇼킹하고 신선했어요. 그런데 말 작품을 계속 하니 작가로서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관람자로서 봤을 때는 그 때 만큼 충격이 없었던 거죠. 스스로 생각했어요. 이 과정 또한 매우 소중하다. 이제 50세가 넘어서 나를 바라보면 그 때 생각했던 것이 좋고 지금 생각하는 것이 나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버릴 것은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까지 흙을 수 십년 만지고 말을 관찰하고 작업하고 그려왔지만 또 다시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과연 뭘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과정이예요. 최근에 아이를 키우면서 자식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봤어요. 피상적으로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한 인간에 대해서 그렇게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아이가 독립을 하면 내가 느낀 어떤 부분을 작품으로 표현할까 스스로도 궁금하고 설레기도 해요. 다른 작업으로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죠.

작업이 변해가는 시점에 굉장히 생각이 많으시겠어요 많은 생각을 하고 작업에서 형태적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생각이 걸러지고 걸러져서 필터링이 다 되어 시각화 한 것이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필터링을 정말 잘 거쳐야 좋은 액기스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

아들을 양육하면서 느낀 부분들이 접목이 되어서 작품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자식 농사는 잘 지으셨나요? 성공이라고 보시나요 성공이죠. 아이의 진학에 대한 성공이라기보다는 그 시기에 제가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옆에 잘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아이가 나중에 성장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로서의 역할을 배웠기 때문에 본인의 아이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창작을 하는 작가도 사실은 사람이고 부모잖아요.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도 행복하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영향을 준다면 그 아이는 올바르고 똑바르게 또 건강하게 자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죠.

꿋꿋하게 서 있는 작품에 그런 마음을 담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자코메티는 아주 여리디 여린 선으로 그 강단을 표현했지만 저는 묵직하게 그 어떠한 변화와 흔들림에도 변화하지 않고 서 있는 구체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제가 아까 말한 바람은 언제나 강풍이 불었다가도 따뜻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살랑살랑 불었다가도 스쳐 지나가잖아요. 거기에서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는 삶, 그것이 추구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해요. 가장 나다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의 움직임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이 우리 안으로 조용히 들어온다. 만물의 으뜸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만물 안에 존재하는 일부이다. 인마일체.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되는 것. 나아가 유종욱 작가는 사람과 자연 혹은 어떠한 관계가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로서 혹은 아버지로서 삶에서 느꼈을 다짐이 작품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현실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형상으로 빚어낸다. 변화하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기쁨과 설렘으로 받아들이는 작가. 작품과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연이 그의 안에서 어떤 조화를 이루어 나갈지 기대해본다.

인터뷰·글 권주희  사진 한용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