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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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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고석민 공장장

같이하는 우리 직원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인생 그 자체인 첫 직장, 이 직장이 마지막 직장이 되길 바라며 지금도 가족 같은 동료들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어려운 세월을 함께 이겨낸 동료들이 더없이 고맙다. 바닥부터 천장골조, 기계에 이르기까지 공장의 어떤 곳도 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40년 전 지어진 공장의 벽과 천장골조 다음으로 그가 가장 오랫동안 이곳을 지켰다.

언제부터 이 공장에서 일하셨어요?
28년 정도 됐어요. 1991년 1월 3일에 입사했어요. 그 당시에는 회사 이름이 탐라사료였어요.

사료에 관심이 있어서 사료공장에 취직하셨나요?
원래 전공은 축산 쪽이었는데, 여기 다니면서 농학을 다시 전공했어요. 축산에 관심이 많아 그쪽으로 많이 공부했죠. 제가 축산기술사로는 제주도 1호예요. 30대 초반에 땄어요.

그동안 공장이 많이 변했겠어요.
많이 변했죠. 일단 사람으로만 봤을 때 처음 입사했을 때 현장만 30여 명이 작업했어요. 그때는 다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을 했어요. 지금은 현장에 한 10명 있는데 그분들이 그때보다 작업 생산량으로 봤을 때 일을 더 많이 하는 편이죠. 일은 편해졌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람 사는 맛이 좀 있었죠. 힘들다 보니 퇴근하고 종합시장 가서 근고기 놓고 소주 한잔 하는 그런 정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게 조금 약해진 거 같아요.

화북공업지역도 마찬가지로 많이 변했죠?
처음 왔을 때는 공업지역에 업체가 반 정도밖에 안 들어왔었어요. 우리 바로 맞은편에 연탄 공장이 두 군데 있었어요. 바람만 불면 연탄 먼지가 날아와서 주변이 시커멓게 되었고, 연탄 찍는 것도 구경하고 그랬어요. 건너편에는 버스회사 한일여객이 있었죠. 여기가 차고지였어요. 지금은 없어졌어요. 길도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반은 포장, 반은 비포장도로였어요. 주변에 소나무밭과 묘지도 있었고요. 지금은 차 세울 공간이 없을 정도로 공장이 꽉 차 있어요. 점심때가 되면 시끌벅적하고요.

공업지역 안에서 과거에 즐겨 가던 곳이 있나요?
공장 바로 앞에 있던 작은 식당이나 가게에 자주 갔었어요. 가게 앞에 조그마한 테이블이 있어서 저녁에 일 끝나면 소주 한잔하곤 했어요. 어느 순간 없어졌어요. 없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요즘에는 유대관계를 위해서 주변에 있는 식당은 모두 가요. 어차피 다 같이 살아야 하니까요. 오늘 이 집에 가면 다음 날에는 저 집에 가곤 해요.

공장이 마을 바로 옆에 있는데 마을과는 관계가 어때요?
마을에 잘하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사람이 같이 어울려서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려고 해요. 동네 체육대회 같은 때에도 가끔 가서 얼굴 비치고 소주 한잔해요.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거죠.

주변과도 친하시죠?
주변 분들과 다 친하죠. 20년 이상 만났으니까요. 다 좋으세요. 제주도 토박이도 있고 외지에서 온 분도 있어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니까 매일 얼굴을 봅니다. 특히 주변 업체 사람들은 자주 만나요.

사료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사료 만드는 방법은 세계 어디서나 다 비슷합니다. 기계만 좀 다를 뿐이에요. 주로 쓰는 원료는 옥수수, 밀, 콩깻묵이에요. 그리고 영양제를 사용해요. 일단 큰 배에 실린 원료가 제주도로 오죠. 그럼 다시 이 공장으로 운반돼요. 공장에 도착한 원료는 밖에 있는 큰 통에 우선 품목별로 저장해요. 그 다음에 필요한 원료를 꺼내서 이송하고 분쇄해요. 너무 크면 소화가 안 되고 먹기 불편해서 분쇄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소, 돼지, 닭에 맞는 영양가에 맞춰 원료의 무게를 달아 비율별로 조금씩 섞어요. 배합이 완료되면 쪄서 모양을 만들어요. 그런 과정을 거쳐 농가로 운송돼요.

사료의 종류가 많겠네요.
돼지 사료가 많고 그다음 닭 사료가 많아요. 돼지 사료도 젖먹이 돼지, 육성돈, 고기 만드는 비육돈, 임신돈, 포유돈 등 단계별로 사료를 만듭니다. 계량이 많이 된 돼지와 흑돼지를 위한 사료도 만들어요. 닭도 마찬가집니다. 닭고기 생산을 위한 육계 사료, 알 낳는 닭을 위한 산란계 사료, 어린병아리용과 중병아리용 사료 등 종류가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사료를 만드는 공장치고는 작아 보여요.
부지 크기로만 봤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료 공장이에요. 다른 공장의 경우 보통 5,000평에서 1만 평 정도 되는데, 우리 공장은 1,000평이 좀 안 돼요. 크기는 가장 작지만 효율은 높아요. 한 달에 7,000t 정도 생산하기 때문에 생산 규모는 커요.

저희가 먹는 대부분의 돼지와 닭이 이 공장 사료를 먹고 자란 걸까요?
우리 공장 사료는 전부 제주도 농장으로 보내져요. 제주도 돼지고기의 30% 정도가 여기서 만든 사료를 먹었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제주산 돼지고기가 맛있는 것 같아요. 맛있는 사료를 먹어서 맛있는 고기가 되는 거죠. 제주도에 있는 돼지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제가 만든 사료를 먹고 있고, 그 돼지를 먹은 사람들이 제주도 돼지고기가 맛있다고 해서 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현재 공장에서는 생산 현장을 관리하는 일을 하세요?
제조 공장 생산 쪽 전체를 관리하고 있어요. 초창기에는 현장에서 일했고, 그 후 관리직으로 왔다가 지금은 공장장을 하고 있어요.

공장에서 있었던 일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엄청 많죠. 처음 왔을 때 당시 여건으로는 몸으로 때우는 일이 많았어요. 오래전에 밖에 있는 원료를 저장하는 사일로가 터진 적도 있어요. 밤새워 고치고 뒤처리했어요. 그리고 탐라사료가 어려워지면서 같이 일했던 친구, 선후배가 한 명, 한 명 나가는 거 보면서 참 서러웠죠. 다른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팜스코로 바뀌고 나서 안정을 찾았어요. 팜스코로 다시 시작할 때 6명이 있었는데, 퇴사했던 분들도 다시 들어와서 현재는 현장에만 10명, 총 19명이 같이 일하고 있어요. 그중 반 이상이 옛날부터 같이 일했던 분들이에요. 저와 같이 28년 된 분도 있고, 평균 한 25년 돼요. 같이 어려움을 겪고 즐거움을 나눈 분들이죠.

공장 건물도 오래된 것 같아요.
공장이 지어진 지 40년 됐어요. 벽하고 천장골조는 저보다 더 오래됐어요. 지어졌을 당시 그대로예요. 천장골조는 딱딱한 나무라서 못도 안 들어가요. 설비보다는 제가 먼저 공장에 왔어요. 1991년 5월 설비를 새로 바꿨어요. 그 뒤로 계속 증설했어요. 공장은 1978년 처음 세워졌는데 그때는 대영농산이라는 작은 정미소 같은 곳이었어요. 그러다 한진그룹 그러니까 제동흥산에서 몇 년 운영하고, 그 다음에 탐라사료가 되었어요. 탐라사료가 어려워지니까 현대사료가 2년 정도 임대로 공장을 운영했고, 팜스코로 바뀐 지 6년 반 정도 됐어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실 때가 많죠?
보람이야 많죠. 손해 안 보고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래도 더 중요한 점은 직원들이 다 만족한다는 거예요. 기존에는 40명 정도 일하다 지금은 19명이 일하는데, 모두 좋아하고 즐거워하고 있어요. 또 한 번 들어오면 절대 안 나가니까 그게 고맙죠. 직원은 대부분 제주도 출신이에요. 제주도는 괸당 문화가 있잖아요. 그래서 서로 잘 챙겨요. 제주도 출신 위주로 이 공장을 운영해서 지금처럼 적은 인원으로 잘하고 있는 거예요. 어려웠지만 빨리 회복된 것도 이런 이유예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뭐가 어려운지 다 알아요. 가족보다 직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니까요.

사료공장이 공장장님에게 큰 의미가 있겠어요.
제 인생이죠. 제 첫 직장이고 앞으로 퇴직할 때까지 여기 있었으면 좋겠고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장과 같이해서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끝날 때까지 같이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겠죠.

직원의 동아리 활동은 자발적인 건가요?
개인별로 이번 달에 무엇을 할지 제안해요. 이번 달은 이것 하자, 여기 좀 안 좋다 이거 하자, 이렇게 의견이 들어오면 취합해 우선순위를 정해서 진행해요. 필요하면 돈을 투자할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을 바꿀 수도 있어요. 우리끼리 살아서 움직이는 체계예요. 스트레스 안 받고 즐겁게 해요. 자신의 생각이 반영되면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젊은 직원과 나이 든 직원 간 세대 차이는 없나요?
팜스코를 시작할 때 같이한 6명과 다시 채용된 예전 직원은 40대, 50대이고 신입사원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에요. 그러니까 15년에서 20년 정도 나이 차가 있어요. 제가 살아보니까 제일 어려운 일이 다른 세대가 서로 맞춰 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소주 한잔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풀어 가요. 저도 젊은 사람 생각을 따라잡으려 하고 맞추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 저도 나이가 먹었는지 젊고 유연하게 생각하려고 정말 열심히 하는데도 어렵더라고요.

어떤 생각에서 차이가 가장 큰가요?
기본 사고가 달라요. 새로 온 직원은 개인의 일을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더 해서 돈을 더 버는 것보다 개인 시간을 더 많이 즐기려고 해요. 나이 든 직원은 회식하며 소주 한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젊은 직원은 영화 보거나 개인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해요. 제 선배들도 제가 막내일 때 맞춰 주셨겠죠. 두 세대가 살아온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인정해야 해요. 선배들이 맞춰 가야죠. 어차피 미래는 젊은 사람들, 새로 온 분들의 세상이니까 그렇게 맞춰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분들이 앞으로 공장과 사회를 끌어가야 하잖아요. 우리에게 맞추라고 하는 것은 고집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같이 일하는 우리 직원들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못해서 나오는 그런 직장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공장을 가서 뭔가 하고 싶다, 같이 어울리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으면 해요.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그래도 직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지금 당장 닥친 문제는 화북공업지역이 2025년 주거용지로 바뀌는 거예요. 그 문제를 풀어 가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도나 정부에서는 산업단지를 만들어 옮긴다는 계획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공장이 여기 있는 동안은 화북공업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화북공업지역 하면 팜스코가 생각날 수 있게 이 공장을 꾸미고 싶어요.

과거에 민원이 많았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우선 그분들이 말하는 것을 다 들어줘야 해요. 객관적으로 보면 문제가 아니라도 그분들이 문제라고 하면 무조건 알겠다고 했어요. 소음 나면 소음 줄이고, 냄새 나면 냄새 안 나게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사료 찌는 냄새가 저희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은 아닐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개선해 갔어요. 직접 가서 우리 상황을 이야기하면 일부 이해해 주기도 했어요. 계속 그렇게 해야 해요.

요즘은 민원이 없을 거 같아요.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또 새로운 측면을 보게 되니까 민원은 반드시 생겨요.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있을 거예요. 공장이 없으면 주변 교통편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죠. 공장 때문에 차 세울 곳도 줄어들고, 큰 차가 다녀서 위험하다는 생각도 하겠죠. 기계 소리가 안 났으면 좋겠고, 모양도 좀 깔끔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민원이 생길 수도 있어요. 이런 부분을 하나하나 개선해야죠. 앞으로 이곳이 주거지역이 되면 일반 주택이 생기고 새로운 사람이 유입될 텐데, 그분들과도 생각의 차이를 좁혀야 해요. 마찰이 생기고 민원도 생길 텐데, 어떻게 공장과 주택이 조화롭게 가느냐가 앞으로 풀어야 하는 숙제예요. 여기에서 공장도 살아야 하고 주변 분들도 편안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그분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조화롭게 사느냐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입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소하세요?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옥상 맨 끝에 올라가죠. 한숨 한번 쉬고 심호흡 한번 하고 내려와요. 위에는 아무도 없고, 시원하고, 제주시 전체를 다 내려다볼 수 있어서 가끔 올라갑니다. 한라산도 보이고 바다도 보여서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회사 일 말고 앞으로의 계획도 듣고 싶어요.
아직까지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살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퇴직하고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있는데 잘 떠오르진 않더라고요. 다른 것을 못 봤고 생각도 못 해 봤으니까 잘 모르겠어요.

글: 김연주, 사진: 한용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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