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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한라윈드앙상블

halla wind ensemble

PROFILE

김승택 음악감독

이제 한라윈드앙상블은 100년을 봐도 좋습니다.

그의 지휘봉은 쉴 틈이 없다. 정기연주회 1년에 네 번, 연습 일주일에 두 번씩 열두 달. 그가 이끄는 한라윈드앙상블이 27년간 지켜온 약속이다. 윈드앙상블이 성장하기 어려운 척박한 풍토에서 시민밴드인 한라윈드앙상블이 100년을 보는 이유는 그의 이러한 성실함 때문이다. 화북공업지역에서는 지금도 공장의 기계 소리가 멈추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한라윈드앙상블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정년퇴임 후 제자가 재원을 마련한 것이 기회가 되어서 1993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27년 되었습니다. 열두 개 고등학교의 밴드부 출신이 모여서 만들었어요. 제주 도민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악기를 연주하고 싶으면 한라윈드앙상블 단원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원이 60~70명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단원이 연습 때마다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요. 창단 후 지금까지의 한라윈드앙상블 단원 명단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어느 단원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참여했는지 기록으로 정확하게 남기고 있습니다.

공연을 보면 여성 단원이 많아요.
여성단원이 12명으로, 3분의 1 정도입니다.

단원은 옛날보다 더 많겠죠?
아닙니다. 최근에는 한라윈드앙상블 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연을 함께 해야 합니다. 일단 무대에 서고 난 다음 단원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서로 협의합니다. 한라윈드앙상블 단원이 되면 회비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은 제가 음악감독, 김우진 선생이 지휘자, 단장, 단원 이렇게 구성돼 있습니다. 아주 단출한 조직 구조입니다. 복잡하지 않게 운영하기 위해서 그렇게 조직했습니다. 음악 감독부터 새로 들어온 단원에 이르기까지 의무와 책임이 똑같습니다. 음악감독이라고 해서 회비를 안 낸다든지 외국에 갈 때 회비에 차등을 둔다든지 하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의무와 권리 부분은 한라윈드앙상블의 존폐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힘으로 모든 단원이 한라윈드앙상블을 받들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단원들이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연습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사실입니다. 직장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1년에 120일쯤 연습합니다. 우리는 평균 40시간 연습해서 한 시간 삼십 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일주일에 화요일과 금요일 두 번씩 열두 달 연습합니다. 화요일과 금요일은 똑같은 곡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번 연습 중 하루는 꼭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연은 토요일에 하는데, 연주회가 있는 주에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연습합니다. 평소에 연습을 충분히 하기 때문에 우리는 리허설할 때 연습이 모자라서 시간을 넘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정한 시간에 딱 맞춰 끝냅니다.

그럼 연주회도 많겠어요.
정기연주회만 1년에 네 번 합니다. 힘듭니다. 우리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공연을 평일에는 할 수 없어서 토요일에 합니다. 그런데 토요일 공연장 대관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일본 후쿠시마의 지진해일 사고가 있고 난 그 다음 달 우리가 교토에 가게 됐습니다. 준비는 끝났는데 여성 단원 일곱 사람이 빠졌습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그 자리를 메울 수가 없어서 지금까지 우리와 교류한 일본 단체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현지에 갔더니 도쿄에서 스물한 사람, 오카야마에서 두 사람, 규슈에서 한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그 정도 인원이면 한 팀을 꾸릴 수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온 것은 좋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숙박, 식사 등을 일곱 사람분만 예약했기 때문에 그 많은 인원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일본의 엄청나게 비싼 교통비와 식비를 스스로 부담하며 도와줬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우리 단원보다 더 많은 일본인 연주가가 무대에 오른 셈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건방진 소리를 좀 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안 가도 일본에 가서 밴드 하나 만들 수 있다고요.

선생님께 가장 의미 있었던 공연은 어느 공연이었나요?
가장 정성을 기울였던 연주회는 지난해 제주 4․3을 주제로 한 음악회였습니다. 우선 작곡가에게 의뢰하여 제주 4․3을 주제로 하는 곡을 작곡해야 했습니다. 섭외를 어떻게 할지를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946년 음력 1월 3일 일본에서 왔습니다. 외가가 함덕이어서 그 이듬해 함덕초등학교 4학년에 편입했습니다. 그때 우리 반 담임은 이기복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분이 북촌 분입니다. 그때 젊은 나이에 교사를 했는데 제주 4․3 때 서우봉 바닷가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의 두 살 난 딸이 너븐숭이 애기무덤에 묻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진혼곡을 작곡해 제목을 ‘너븐숭이 애기무덤에 바치는 조가(자장가)’라고 정했어요. 할아버지가 표선 출신인 교포 2세 박수현 작곡가에게 작곡을 의뢰해서 그 곡을 연주했습니다. 제주 4․3 전체를 우리 한라윈드앙상블에서 감당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공연의 초점을 이기복 선생님에게 맞췄습니다.

그 공연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셨군요.
그때 제주 4․3을 주제로 한 그 곡에 아주 익숙한 멜로디가 있었어요. 원래 박수현 지휘자가 지휘할 예정은 아니었는데, 스스로 지휘하러 오겠다고 해서 맡겼습니다. 박수현 지휘자가 연습할 때나 당일 연주를 할 때 매우 친숙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공연 다음 날 그러니까 일요일 아침 잠결에 그 곡을 흥얼거리면서 일어났는데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동생들을 키울 때 아기 구덕 흔들면서 불렀던 노래로구나 깨달았어요. “웡이 자랑 웡이 자라앙.” 한라윈드앙상블 단원이면 언제 어디서든 이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모든 단원이 암보했습니다.

의미 있는 악보도 있을 것 같아요.
한라윈드앙상블에는 작곡가에게 작곡을 위촉한 곡들이 있습니다. 박수연 작곡의 충원, 김은진 가나가와조선취주악단 지휘자의 4․3곡과 5․18곡 등입니다. 내년에 광주에 가서 우리는 5․18곡을 연주하고 광주는 4․3곡을 연주하기로 해서 김은진 지휘자에게 두 곡을 의뢰했습니다. 악보에 ‘한라윈드앙상블 위촉곡’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제주 4․3을 주제로 한 신작 관악곡을 만들려고 일본에 있는 작곡가들에게 이미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악보가 있습니다. 지금 모든 악보는 알파벳순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우리 단체의 귀중한 자산입니다.

화북공업지역에 연습실을 마련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화북은 한라윈드앙상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마을입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을 시작한 곳이 화북동에 있는 고등학교 음악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온 뒤에는 연습장소 때문에 19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겨울에는 난방을, 여름에는 냉방을 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이 지속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 19년 동안 헤맨 것입니다. 19년 동안 회비도 안 받았습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돈을 만들었습니다.

회비도 없었나요?
돈이 없었는데도 돈 없어서 못한 일은 없었습니다. 뜻이 있으면 돈은 어디서든 생겼습니다.

가능성이 안 보였는데 지금은 연습실을 만드셨네요?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19년째 되던 해 어떤 확신이 서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회비도 받고 하면서 화북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등학교 음악실에서 연습하다가 서로 불편해서 떠난 뒤 9번 정도 이사했습니다. 어떤 때는 두 달에 세 번 옮길 때도 있었습니다. 한라윈드앙상블 악보와 비품을 전부 옮기려면 5톤 트럭으로 두 대는 불러야 합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은 필요한 악기를 전부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악기만 5톤 정도니까요.

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화북공업지역에는 낮에는 사람이 있지만 밤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떠들어도 됩니다. 연습실로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이 건물은 전세버스회사 사옥이었습니다. 정년퇴직한 뒤 이 건물을 지을 때 제가 현장 감독을 했습니다. 건물 짓고 13개월 근무하다 보니 건물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단원들도 모릅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이 이렇게 올 줄 알았으면 한라윈드앙상블에 맞게 만들 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도 한 번 이곳을 연습실로 사용했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더 인연이 있습니다. 회비 2만 원은 이 연습실 임차료에만 사용됩니다.

화북공업지역에서 어떤 활동이 있었나요?
5년 전 이곳 연습실로 이사한 뒤 주제가 있는 음악회를 공업지역 안에서 일하는 사람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름 묻은 손이 있는 장소에서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음악회를 세 번 열었습니다. 어느 해는 음악회 열 때 비가 와서 교육대학 강당에서 하기도 했습니다. 공업지역 안에서 근무하는 단원이 있어서 화북을 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회를 열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퇴근 후에 공연을 하다 보니 공연 시간에 모두 집으로 퇴근하는 바람에 관객 동원에 실패했어요. 이 같은 관객 동원 문제가 있어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의 자랑거리를 소개해 주세요.
일본의 관악계 인사가 이야기했습니다. “한라윈드앙상블은 경영에 성공한 단체이다.” 한라윈드항상블은 일본 공연을 열한 번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2년에 한 번 갔지만 최근에는 매년 갑니다. 모두 다른 장소에서 공연합니다.

보유한 악기 중에 특별한 악기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악보에 나오는 악기는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한 곡 연주하는 데 마지막 화장, 그러니까 눈화장처럼 악센트를 주는 파트가 타악기입니다. 악보에 리듬만 있으면 무슨 악기로 연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악기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미국 작곡가의 악보를 봤더니 영어로 무슨 악기가 필요하다고 쓰여 있는데 사전을 찾아봐도 없는 악기였습니다. 다시 잘 읽어 봤더니 ‘BUCK’도 있고 ‘BOOK’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어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악기였습니다. 신곡을 만들 때 작곡가가 그 곡의 연주를 위해 지휘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봤더니 ‘BOOK’ 다음에 ‘Korean’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한국 타악기에 관심을 둔 작곡가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곡을 연주할 때는 우리의 북, 장구, 꽹과리가 필요하지요. 꽹과리를 영어로 적어놓았는데 스펠링이 어떻게나 긴지 도대체 무슨 악기인지 몰라 한참 헤매기도 했습니다. 악보에 있는 북과 꽹과리까지 모두 구입해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교류를 오랫동안 지속해 오셨죠?
일본 단체와의 교류에 치중됐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국내 단체와 교류하기 위해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국제 교류는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아요.
일본 단체와 교류할 때는 악단에서 원하는 날 대관해 줘야 하는데 그렇게 해 주지 않아서 2019년에는 두 번 다 취소되었습니다. 5월에 오사카조선취주악단이 왔어야 했는데 오지 못했습니다. 그 악단 지휘자가 고창수 씨입니다. 고창수 씨는 할아버지가 고산 출신인 교포 3세인데 작년에 오사카대학교 정교수가 됐습니다. 그는 일본 관악계에서 유명 인사입니다. 난도가 가장 높은 콩쿠르에서 금년에도 그의 작품이 당선됐습니다. 그는 일본 작곡가 사이에서도 관악 작곡가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래전 일본 관악잡지를 보다 아직 무명이었던 20대 고창수 씨를 알았습니다. 고 씨라면 제주 출신이니까 만나고 싶어서 일본 갈 때 외무부에서 총련계 인사 접촉 신고서를 쓰고 가서 만났습니다. 1995년이었으니까요. 그 당시는 그런 때였습니다. 그렇게 만난 고창수 지휘자가 제주도에 오기까지는 11년이 걸렸습니다.

앞으로 일본과 교류는 어떻게 이어 가실 계획이세요?
저도 언젠간 한라윈드앙상블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오사카조선취주악단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제가 그만두어도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곳 단원들은 일본말을 한국말보다 훨씬 잘하는데 저와 이야기할 때는 절대 일본말 안 씁니다. 오사카조선취주악단 단원이 40명쯤 되는데 고창수 지휘자의 한국어 실력은 40등입니다. 그래도 절대 일본말 안 씁니다. 그래서 제가 그만둬도 오사카조선취주악단과 교류가 가능합니다. 새로 교류하게 된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조선취주악단과 교류 공연을 하러 2020년 10월 일본에 갑니다. 두 단체는 말이 통하니까 앞으로 계속 교류가 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윈드앙상블이 많지 않아서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한국과 같은 풍토에서 한라윈드앙상블 같은 단체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한국은 관악의 토양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전문 악기제조회사도 없고 악보 전문 출판사도 하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악보를 복사해서 사용합니다. 저작권이 있어서 외국에서는 단원마다 같은 악보를 구입하는데 우리나라는 A라는 단체가 서울에서 연주하면 B단체에서 복사해 달라고 해서 제주도까지 오는데 빠르면 2개월, 늦어도 3개월 후에는 옵니다. 계속 복사해서 제주도까지 오면 8분음표의 머리 부분이 새까매야 하는데 하얗게 됩니다. 그런 음표는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여기 이사 와서 정돈된 다음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한라윈드앙상블은 100년을 봐도 좋습니다.” 100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터전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100년이라고 이야기는 했습니다만 절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글: 김연주, 사진: 한용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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