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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홍보람

Hong Boram

PROFILE

홍보람은 개인의 한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개인의 경계너머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경험들을 드로잉, 판화, 페인팅 그리고 영상 혹은 소리가 포함된 설치 작업으로 창작하고 있다.

<마음의 지도>라는 이름으로 2002 년부터 사람들을 직접 만나 공간과 연관된 그들의 기억을 숙성시켜 드러내 치유하고 치유 받으면서 서로 성숙시켜나가는 오랜 프로젝트를 꾸준히 하고 있다. 4.3 생존 희생자들과 작업하며 ‘인간이란 무엇일까,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등에 대한 의문과 고민들이 깊어졌고 그런 고민들을 자연의 이치 속에서 이해하며 작업으로 연결해나가고 있다.

제주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용암의 생성 분출과 대지의 형성 그리고 물과의 만남, 물과 물의 관계, 용암과 물이 만나 굳어진 현무암과 파도에 닳고 닳아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바위들, 올록볼록 솟은 오름’ 등으로, ‘어떻게 서로가 만나 서로를 내포하고 영향을 미치는지’, 자연 에너지와 그 형태를 이해해나갔다. ‘생각이나 느낌을 형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인간 인식이 자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기적이며 대칭적인 모양과 형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를 느끼고 배우며 연구’한다. 숲에서 흔히 보이는 솔방울과 나뭇잎, 돌멩이 등 자연물이 기본적인 형태가 갖는 에너지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며 주고받는 자연의 에너지가 그 속에 존재하는 생명력과 맞물리며 나와 네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는, 나의 경계가 수많은 구멍으로 다른 것들에게 열려 있는, ‘존재의 순간’으로 종이에 목탄으로 그려낸 “존재하기” 시리즈 작업이 있다.

우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미물인 인간이지만 그 인간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인간 안에도 우주만큼 광대한 이해 불가능한 것이 들어있음을 놀라워하며 존재의 에너지를 자연에서 찾아내고 있다.

象을 찾아서 Looking for Images of Idea

2009년 홍보람 작가의 전시를 아트스페이스·씨에 초대하면서 작가의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함께 전시를 만들어오고 있다. 홍보람 작가는 제주시 아파트의 편리한 생활을 접고 지난 해 초등학교 입학생과 유아원생인 두 아이를 위해 온 가족이 감귤 농장이 많은 서귀포시 남원의 한 작은 개인주택으로 옮겨 살고 있다. 작가가 이사한 후 그 집을 처음 찾아갔다. 흐린 제주시의 날씨와 달리 작가가 이사한 오래된 주택 창문으로는 남쪽의 따뜻한 햇살이 집안 가득 들어왔다. 방 하나를 작업실로 만들어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기억하는 공간의 경험을 이야기와 그림으로 나누는 프로젝트를 바삐 진행해왔던 작가는 거기서 얻은 에너지 이상으로 자신이 소진되어버렸다. 그래서 선택한 미국 뉴욕 근처 버몬트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의 레지던시가 작가에겐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거기서 저는 자화상을 처음으로 그린 거 같아요. 진짜 제가 생각하는 저의 자화상. 드로잉도 다시 시작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내가 겉으로 꾸며왔던 나 말고 진짜 그 안에 있는 나는 이런 모습이고 이런 걸 원하고 이런 걸 행복해하고 뭐 그런거 조금씩 만나는 시간이었는데 그렇게 해준 게 저는 그곳의 자연이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경계 없이 펼쳐져 있었던 시야도 그랬고, 시간들도 그랬고, 그래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자연이 좋은 곳을 찾아야겠다는 계기를 그때 마음에 품게 되었구요. 그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그런 곳을 막 찾다가 이중섭 창작스튜디오 일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거구나’ 딱 신청을 했는데 대해서 이제 2009년에 제주도 서귀포 정방동 스튜디오에서 1년 동안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에도 계속 그런 자연의 주는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어떻게 보니 지금까지 머물고 있게 되었어요.

작가가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이 세상과 교감하는데 어떤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결국 작업에 어떻게 관련되는지 궁금했다.
제가 자연을 관찰을 하는데 그때 제 머릿속에는 저와 다른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들, 거기에서 내가 만나고 있는 문제들이나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연이 어떤 형태나 모양으로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아요. 자연의 형태들을 추상화 해서, 만일 물과 돌이라면 그 둘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전 느끼는데 그걸 통해서 저는 저랑 타인의 갈등을 보는 거죠. 거기서 답을 얻곤 해요. 아 저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아서 어떤 형태가 되고 나도 그렇구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아서 내가 되는구나. 그걸 저는 느끼고 시각화를 하게되죠.형태마다 그 형태가 갖고 있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형태를 갖게 되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그 안에서 힘의 변화.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갈등, 마찰. 이런 것들이 계속 일어나서 결국에 그 형태가 되는데 그게 저는 ‘형태에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메세지를 어느 순간 받거든요.

작가는 자연 현상에서 어떤 의지와 에너지를 느끼고 그것을 다시 인간 세상의 이치들과 연결해 유추해내며 그것을 어떤 상象으로 그려내며 작품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자연을 보면서…. 그런 건 그런 의지가 있는데 그 의지라는게 항상 저의 선입관을 계속 깨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느 날 내 딴에는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빛이 있으니까 그걸 향해서 가지를 뻗어 그러니까 ‘가지는 다 위로 향한다.’는 약간의 저만이 이해하고 제가 본 것으로부터 이해한 어떤게 생겼단 말이예요. 근데 산책을 하는데 가지가 바닥쪽으로 향하는 나뭇가지들이 보이는 거예요. ‘아 그렇지!’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보고 정리한 어떤 것들은 항상 예외가 있구나. 내가 관찰한 세계 이외의 세계가 늘 존재한다는 거를 그런 식으로 지금 예를 든 것처럼, 자연을 보면 계속 그걸 저한테 알려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제가 지금 사람의 몸으로 가족과의 관계 그리고 제가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고 관람객이 보고 하는 이런 흐름 안에서의 관계 모든 관계들도 되게 압축해서 보여줘요.
자연에서 본 꽃이 너무 예뻐서 꽃의 생기를 담고 싶어서 꽃의 형태를 그린다기 보다는 그 안에 담겨 있어 존재하고 있는 에너지. 그것으로 존재하게 하는 에너지. 그것의 형태를 계속 보고 싶고 그것을 봤다고 느껴질 때 저의 머릿속도 되게 맑아지고 제가 대화하고 있는 저의 실제적인 관계들에서도 조금 더 차분하게 그것들을 헤쳐나갈 용기가 생기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걸 보시는 분에게도 ‘저거는 나뭇가지지.’ ‘저거는 솔방울이지.’ 이렇게 와서 끝나는 것에서 멈추고 싶지 않고 저처럼 조금 추상화된 형태라서 좀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기를 바라는 점도 있는 거 같아요.

자연과의 교감으로 추상화된 작업 이외에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조금은 더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수채화 작업 등도 있는데, 자연과의 이런 내밀한 교감 이후에 어떤 변화 혹은 다름이 있는지 궁금했다. 작가에겐 매일의 일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에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떠오르는 장면으로 그려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후 좀 더 몰입의 시간을 들여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를 시간차를 두고 지나면 이해 못했던 상황을 좀 더 이해하게 되고 자연에서 얻은 영감이 더해져 객관적 혹은 관조적으로 보게 되면서 추상적 형태로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겪는다고 했다.

홍보람 작가는 음반도 낼 정도로 보컬로 밴드 활동도 했고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즉흥적으로 드로잉 작업을 할 정도로 음악과 밀접한 작업을 해왔다. 설치 작업에 사운드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런 활동 배경을 지닌 작가가 자연의 다양한 소리를 놓칠 리가 없다.
제가 강하지 못해서 어디에 막 세게 발언을 하기 보다는 듣는 쪽에 가깝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경험을 넘어선 순간에 내가 존재해야 될 때 안에서 막 감정들이 들끓을 때 저는 주로 다 멈추고 일단 들어 보려고 해요. 지금 남아있는 소리들이 뭔지 ‘차가 지나간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듣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래’ 그렇게 한 다음에 다시 ‘내가 여기 있다.’ 이게 좀 되는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그 소리를 하는게 어떻게 보면 ‘내가 그렇게 살아 있고 여기 있다.’ 그거가 시각적으로 한 거보다 훨씬 저한텐 더 빨리 와요. 내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다. 그리고 누가 오고 있다. 여기서 멀어져간다. 어떤 것이 나에게 다가온다.
형태에도 그런게 있는데, 뾰족한 형태에선 두려움이 느껴지고 둥근 형태에선 좀 편안해지고 따뜻함을 느끼고… 그래서 그런지 소리를 들을 때 굉장히 집중을 하게 되고 그 존재가 왜 거기 있는지 뭘 얘기하려고 있는지 더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하나에만 집중을 하게 될 때 되게 좋아요. 순수해지고 좋아요. 그래서 아마 그런 즉흥 드로잉을 할 때도 상대 연주, 그 연주를 하는 즉흥연주자들도 즉흥으로 하기 때문에 자기가 낸 소리에서 뭐가 나올지 자기도 모르거든요. 근데 그거를 계속 듣고 느끼고 거기 안에서 빨리 답이 나와서 뭔가 다음 소리를 만들고 그 과정에 같이 있는 시간이 되게 압축된 시간처럼 느껴져요. 그 시간의 질이 다른거죠. 그냥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그 레이어 밑에 있는 그 멈춘 것 같은 시간. 그거를 느끼기 위해서 그렇게 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드로잉으로 할 때도 그 소리 하나하나를 굉장히 집중을 해서 하게 되고 전시공간 안에 소리를 틀 때는 관객이 시각적인 것 외에도 뭔가를 경험하고 있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그 느낌 그리고 어떤 형태가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조금 더 강조해서 표현하고 싶을 때 공간감을 더 주기 위해서. 공간감과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여기 있다는 느낌을 더 주기 위해서 소리를 쓰곤 하는데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소리만은 아니에요. 되게 그 의미를 빼고 난 소리들이 대부분이거든요. 허윤희 작가님 하고 전시 준비를 위한 대화를 작업에 담아낼 때도 대화 자체에 내용은 없어요. 그 소리에 그냥 서로 ‘맞아’ ‘응’ ‘그래’ 이런 식의 조금씩 북돋워주는 소리들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소리들이 주는 힘. 에너지. 되게 미미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주고 이완하게 해주는 그런 힘. 그런게 너무 좋아서 저도 막 긴장을 되게 잘하고 약하기 때문에 아마 아마 그래서 그런 것들에 반응하는 분들에게 되게 좀 풀어진 마음으로 마음껏 그 안에 보여지는 것들을 보실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던 거 같아요.

제주에서 자연과 깊이 있게 교감하는 시간이 작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제주로 이주하게 될 즈음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애도 둘씩이나 둔 엄마이자 아내, 딸이자 며느리로서 역할들이라는 굉장히 복잡한 정체성을 지니게 되었다. 작업에 집중하는데 어려움이자 세상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텐데 작가는 이 상황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창작할 수 있을까.
요즘 작업도 잘 못하고 있는데 인터뷰하게 되면서 ‘나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근데 문득 내 삶의 시간들이 패치워크 되어 있다는 그런 느낌이 딱 오는 거예요. 이미지로. 내가 나로서 작가로서 작업을 할 수 있는 주어진 시간은 한계가 있는데 그 전에 비하면 확실히 몰입으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시간도 한계가 있어요 물질처럼 숨을 참고 들어가서 딱 하고 나와야 돼요 . 작업을 그런 식으로 해서 삶이 지금 지속이 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아마 여기서 뭔가 또 작업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게 아닐까. 아직 이해가 안 된 어떤 것으로 나를 바라보고 작업으로 풀어내야 되겠구나.

너무 평안하고 평탄한 시간만 있으면 어떤 욕구나 갈망이 별로 없게 되고 그런 삶 속에서는 창작 의욕이 끓어오를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예술가의 삶은 늘 의문과 갈등이 가득한,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야 하는 그런 삶 속에 있고 그런 복잡한 상황을 세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삼아 창작해 작업으로 담아내게 되는 건 아닌가 물었다.
저는 만약에 제가 두 아이와 가족과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한다면 그건 또 어떤 모습의 삶일까? 그럼 나는 그림을 그릴까? 작업을 해야 되는 이유가 있을까? 근데 그래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뭔가 여러 문제들? 힘겨움? 이거랑 작업이랑 ‘자꾸 힘겨워서 작업을 할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하나씩 하나씩 애정을 가지고 풀어가야 하는 거고 작업도 그렇게 해야 되고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 같거든요. 행복한 순간에는 또 행복한 부분이 주는 어떤 느낌을 또 작업으로 하고, 뭔가 풀리지 않아서 씨름하고 있는 것들은 또 그런 형태로도 작업이 되면 정말 좋겠다. 근데 어떻게 되든 제가 생각할 때 내가 제일 안정되고 행복한 순간은 작업을 할 때였다는 걸 난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걸 어떤 순간에도 놓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있는데, 반면 한편으로는 그 마음 때문에 억지로 작업을 하면 안 된다. 억지로 하면 안 되고 또 하고 싶기 때문에 해야 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야 하고 이게 지금 제 앞에 놓인 시기적으로 놓인 그런 문제들이겠죠. 그걸 잘 풀어 봐야겠죠.

개인적인 한계나 난관은 그렇게 풀어나간다 해도, 전 세계적으로 Covid-19 라는 전염병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삶을 지향해야 될까? 나도 갑자기 죽진 않을까 그런 공포를 겪고 있는데 작가는 이런 시기를 어떻게 경험하게 될까.
가뜩이나 한정된 시간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제 시간대로 돌아가지 않고 비상대기처럼 다른 일들이 막 터지기 때문에 저처럼 적응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난감할 뿐 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을 잘 활용해서 그쪽으로라도 작업이나 자기의 삶 등을 홍보해 가지고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로 삼아서 그렇게 발 빠르게 대처해야지 뭐하고 있는 거야. 하는 내면의 소리 혹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들은 소리들이 머리에서 메아리치기도 하고 그런데, 일단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그리고 아무리 다른 걸 온라인으로 봐도 저는 그렇게 감흥이 오지 않더라고요. 거기서 내가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하던 걸 해야되겠다. 내가 하려고 마음먹었던 거를 더 긴 시간을 내서 긴 안목을 가지고 해야 되겠다는 생각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사람들의 온기가 많이 다 빠진 거 같거든요 온라인으로 뭐를 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서… 거기에 어떻게 하면 더 온기를 넣어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고 있는 상태예요. 너무 많은 접촉보다는 내가 나랑 내 주변에 있는 쪽에 평화나 이런 걸 좀 더 살피고 내가 해 왔던 방식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 내가 소비하고 있는 것들이 다 괜찮은가 살피고 작업에 대해서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었는지 또 한번 더 살펴보고…

약삭빠른 적응보다 오히려 신중하게 해오던 작업들을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이 시대의 문제를 작업에 담아낼 것으로 기대되는 대답이었다.

<마음의 지도>와 탈북민들과의 만남과 인터뷰, 기록과 작업을 전시로 진행했던 했던 작가로서, 제주에 살며 4·3을 겪으신 어르신들을 만나서 이야기 듣고 그분들의 기억을 그림으로 직접 그려보게 하는 작업들도 했다. 그런 작업이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제 안목이 많이 넓어졌고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입장으로서는 ‘함부로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면 안 된다.’ 라는 메시지… 마음이 단단하지 않을 때 들어가면 거기서부터 더 큰 파장이 생긴다는 거를 깨달았던 거 같고, 치료 효과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와 그분들에게도 안 좋은 기억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하는 것이 그 기억을 만성화 시키게 되는 것도 있다는 걸 읽고 알게되었어요. 논문 같은걸로. 어디 가서 그 얘기를 하고 오면 그 날은 그 꿈을 꾼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그 부분만을 관심을 가지잖아요. 그분의 매일의 삶 오늘 아침에 뭐 어땠는지 기분이 어떤지 전혀 관심 없고 그냥 그 얘기를 그 사람 당사자 입에서 듣길 원하는 거잖아요. 그 이후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되잖아요. 그럴 바에는 되게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되고 훨씬 더 인간적 성숙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마음이 계속 쓰이기는 해요. 그때 만나서 인터뷰하셨던 분들 그 중에 몇 분은 계속 만나 뵙고있기도 한데 삶은 계속 지속이 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상황과 그분의 상황도 계속 변하고 거기에서 상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되게 중요한데 어떻게 그걸 해 나갈 것인가? 그게 그것들을 겪고 나서 얻게 된 것이예요. 그리고 특정해서 4·3을 겪은 분들 뿐만 아니라 아마 모두에게 아픔이 있을 거고 그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서 어떻게 풀 수 있는가! 저는 좀 이상한게 요즘말로 하면은 뭐 심리상담가 아니면 뭐 옛날 말로 하면 무당 아니면 뭐 이렇게… 좀 그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해서 풀게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을 저 스스로 하고 싶은가 봐요. 어떤 면에서. 그거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지 서로 상처를 받지 않고 더 나은 쪽으로 갈 수 있는지 이런 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 수업을 한다거나 아니면은 그렇게 다른분들에게 뭔가를 하게 할 때는 그 태도와 자세와 이런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아요. 그 분에게 어떻게 뭐를 끌어내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온기와 스스로 풀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뭐가 있을까 그런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거 같아요.

의미있는 작업이나 아직은 부족함 때문에 인터뷰 당사자들이나 진행한 작가 자신이나 더 힘들게 될 수 있다는 것… 연구에 의하면 타인의 트라우마더라도 그에 관련된 작업을 하는 예술가 역시도 그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고통의 당사자를 만나 기억을 환기하고 작업으로 이어가는 활동이 예술의 놀라운 힘이기도 하지만 상처를 덧나게 할 수도 있고 작가에게도 버거운 일이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태도다.
도대체 인간이 뭔가에 대해서 그 이후로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과연 그 상황이면 안 그럴 수 있었을까? 반대입장이었을 때 뭐 이럴 때?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뭔가 무서움… 그게 계속 남아서 사람의 실상을 보게 한다는 것, 또 자기가 자기 실상을 보게 한다는게 되게 힘들고 보기 싫고 그런 걸 보게 만들잖아요. 그 파장력이 엄청난 것 같아요.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사하고 정리하느라 작업을 놓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어디서 다시 작업을 시작할지 잘 고민해보고 지금 삶의 흐름 속에서 찾아보려 노력중이다.
작가에게는 관찰의 대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무언가와 교감하고 있는 그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관찰 대상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물/무생물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추상적으로 보여주고 싶고 계속 우리는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관찰 대상이 중요한 경우에도 그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만들고 있는 의지 혹은 에너지… 시간이 흘러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 어떤 느낌. 그것을 담아내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이 다 영향을 받는다. 서로에게.. 그거 정도거든요. 어떻게 표현을 더 그것까지 드러나게 할지는 제가 아마도 연구를 하면서 작업을 통해서 또 살면서 해 나가야 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제주는 영감의 원천일까?
내가 지금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관계들을 어떻게 잘 다뤄낼 것인가 그리고 시공간 안에서 내가 어떻게 이것들을 해 나갈 것인가 이런 쪽으로 주제가 조금씩 모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그리고 시각적 여유 공간을 펼쳐져 있는 자연의 공간들 그런 걸 볼 때마다 전 되게 감사하게 느끼면서 지내고 있어요. 되게 머리 속이 복잡하고 눌려 있다가도 밖에 나가서 한라산이라도 한번 보면 거기서 그냥 말없이 전해지는 에너지가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마음이 한번 이렇게 씻어진다던지 눈이 씻어진다던지 좁아있던 생각들을 조금 더 여유롭게 해 준다던지 알게 모르게 영향이 있다고 생각이 되고 공간이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계절이 또 계속 바뀌고 날씨가 바뀌고 그렇기 때문에 빛이 바뀌고 거기 따라 저도 막 마음이 막 바뀌어서 그런 건 참 아직도 좋아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더디더라도 섬세하게 교감하며 작업해나가겠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작가 인터뷰 및 정리: 안혜경, 사진: 한용환 (2020)
안혜경: 일상과 사회적 이슈를 예술과 문화로 소통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아트스페이스·씨를 2006년 부터 운영하고 있고 다양한 전시와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