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CE

3명의 작가들

Culture space yang

PROFILE

김강훈
1981년 제주 이도동에서 출생
중국 중앙미술학원 회화과 3공작실 석사졸업
제주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미술학부/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출강
광주 소암미술관 ‘대화의속도-진실을 향하여’ 개인전

임영실 www.youngsillim.com
1980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
미국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서양화 전공/예술사 부전공 졸업
제주문화예술재단 아트큐브 7차 전시 ‘Everyday Life Series’
2018 제주 청년유망예술가 선정

박주우
1988년 제주 애월에서 출생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수료
제주 삼달리 아트창고 레지던시 입주작가
제 41회 제주도 미술대전 서양화부분 대상

한 공간의 시너지로 오늘도 작업 중입니다.

긴 직사각형 작업실의 한 켠마다 다른 얼굴이 인사한다. 소리마저 들려주는 리드미컬한 제주 풍경이, 날 것의 대화를 건네는 인물이, 쓰임이 다한 유한한 생이 걸어 나와 가슴을 두들긴다. 거로에 자리한 작업실의 작가 셋. 그들에게 작업실은 쉼터이자 놀이터요, 제대로 호흡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다. 같은 공간이되 작가마다 다른 생각과 시간, 속도가 붓끝에서 피어올랐다.

작업실을 거로에서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김강훈 2016년도였을 거예요.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죠. 공업단지 근처인 이곳이 일단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었어요. 낮에는 작업하기에 조용한 환경이고요.
박주우 이전 쓰던 작업실에서 이사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널찍한 공간을 나눠 사용하면 경제적으로 좋겠다 싶어서 강훈 형 작업실로 옮겼죠. 2017년에 임영실 작가와 거의 동시에 왔어요.

임영실 작가는 제주 태생이 아닌 거로 알고 있어요.
임영실 제주 온 지 올해로 8년 차예요.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오게 되었죠. 제주살이 전에 좀 치열히 살아서 1년 정도 휴양 차 쉬려는 의미로 왔어요. 작업하고 인맥을 쌓다 보니, 이곳 생활이 자연스러워졌죠. 한곳에 이리 오래 정착한 적은 제 인생에 처음이에요.

거주하는 곳과 작업실이 있는 이곳을 비교하면 어떤가요?
김강훈 여기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신촌리에 살고 있어요. 나이 드신 분이 많은 마을이다 보니, 거리에서 젊은 분을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조용하고 깨끗합니다. 옛 제주도의 느낌이 있어서 정감 가는 동네예요.
임영실 제가 사는 한림과 비교하면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 같아요. 화북공업단지라고 하면 시끄럽고 어두컴컴하고 공기도 안 좋다는 이미지만 강하잖아요. 글쎄요. 의외로 마을 안길로 가면 꼬불꼬불 길을 잃기 좋은 미로처럼 되어 소박한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마트도 있고, 차 수리하기도 편하고, 공구 구하기도 쉽고요. 쇼핑하기가 생각보다 좋더라고요.
박주우 저는 여기에서 거의 거주하듯 지내는데요. 낮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참 조용한 동네예요.

작업실을 세 분이 사용하다 보니, 남모를 시너지가 있을 듯해요.
박주우 그럼요. 혼자 작업하면 개인적으론 상당히 늘어지는 편인데, 옆에서 으샤으샤 작업 의지를 솟게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작가가 작업한 것을 보면 고무되기도 하고요. 두 작가로부터 다른 작업방식을 깨닫곤 합니다. 전 앞으로도 혼자 작업실을 쓰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아서요.
김강훈 두 작가가 오기 전엔 혼자 이곳을 썼어요. 혼자 쓸 때나 같이 쓸 때 각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같이 쓸 땐, 박 작가 말처럼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는 점이 좋은 듯해요. 작가끼리 대화해서 좀 더 검증한 뒤 선보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자칫 제 생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보다는요.

의외네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오히려 예민할 줄 알았어요.
김강훈 나은 방향성을 띄기 쉬운 것 같아요. 혼자 쓸 때는 좀 더 자유분방하다는 장점이 있죠. 제가 무슨 짓을 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제 작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요.
임영실 아무래도 제가 여자이다 보니, 두 작가가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요. 남자들끼리 쓰는 것과는 또 다르겠죠. 같이 작업하다 보니, 제 작업 속도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어 그게 시너지가 되는 것 같아요. 놀라는 점도 많죠. 강훈 작가의 작품은 회화적 표현의 정석 같은 느낌이에요. 인물이나 색감 표현을 참 잘하죠. 주우 작가는 밀도를 잘 내고 컬러를 섞는 감각이 뛰어나요.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감각을 둘 다 갖고 있죠.

각자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요?
임영실 제 작품은 풍경과 일상 시리즈로 크게 분류할 수 있어요. 풍경 작품은 제주의 자연을 보고 느낀 걸 유화로 풀어내는 큰 작업이죠. 일상 시리즈는 그날 느낀 느낌이나 인상에 남았던 풍경 등을 토대로 이런저런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든지, 다양한 기록을 하는 일기장 같은 작업이에요. 이걸 작품으로 완성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2017년에 아트큐브 7차 전시로 선보이게 되었어요. 절물 휴양림에서 1~2평 정도 되는 컨테이너 안을 꾸미는 프로젝트였죠. 마치 찾아가는 미술관처럼 풍경을 볼 겸 가볍게 작품 감상을 하는 취지로 된 공간이었어요. 이때 처음 일상 시리즈를 생각해봤습니다. 작은 작품들로도 한 공간이 꾸며질 수 있다는 것도, 생각보다 제 일상이 상당히 다이나믹하다는 사실도 깨달았죠.

일상 시리즈를 건드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임영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시작했어요. 수업 과제 중 하나가 ‘Painting a day’라 해서, 하루 하나씩 주제나 재료에 상관없이 작은 작업을 아무 부담 없이 했어요. 작가가 오늘은 이게 맞았다가 내일은 틀리기도 하는 등 생각이 많고 다양하잖아요. 이걸 하다 보면 웬만한 실험은 다 할 수 있고, 제 성향에도 잘 맞았어요. 이걸 모으다 보니 일상의 기록도 되고요.

강훈 작가는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죠?
김강훈 저는 중국에서 7년간 유학한 뒤 돌아온 이유가 있었어요. 중국에는 아직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그림 그리는 소재를 택할 시 답답함이 있었죠. 경제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도 엄청나게 심각했고요. 그런데 돌아온 제주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극심한 미세먼지는 물론 제2공항이나 해군기지 건설 등 사회문제가 벌어지고 있었죠. 의문했어요. ‘도대체 사람은 무엇일까?’ 제 작품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함에 있어요. 진실한 대화의 나비효과로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죠.

중국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김강훈 스스로 궁금한 걸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그림 그릴 때 거짓말하는 것 같았어요. 어릴 때부터 표현하고 잘 그리는 그림을 좋아했는데요. 한국이나 유럽, 미국 등 현대미술 성향이 강한 곳보다 좀 더 정직하고 솔직한 부분을 다듬을 수 있는 곳을 택한 것 같아요. 중국에서 그림 그리는 기술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 등을 차근차근 배워 나갔죠.

제주 태생이다 보니, 7년간의 공백으로 느낀 영향도 있을 텐데요.
김강훈 뉴스를 통해 한국 상황을 인지하곤 있었는데, 실감하진 못했어요. 돌아와서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제게 향했던 작업관이 상대를 보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라가 변화되는 양상을 보면서 나의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와 맞물려 중국에 있는 상황과 제주에 있는 상황을 비교 분석하면서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됐죠.

대화에 관한 작품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김강훈 중국에서는 모델을 구하기 쉬운 편이에요. 모델 회사도 많고, 모델료도 시간당 1천~1천5백원 정도로 싸죠. 작품을 구상한 뒤 모델 그리기가 참 편해요. 제주에서 대화를 주제로 작업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인간의 나체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때 박주우 작가가 선뜻 옷을 벗어준 게 기억에 남네요. ‘관계-차마시는남자’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어요. 이게 2017년도 여름이었을 거예요.
박주우 아니야. 추웠어. 되게 추웠어요.
임영실 전 그때 없었어요.(웃음)
김강훈 없었죠. 누나 스케줄을 미리 다 체크했죠.
박주우 처음엔 상의 탈의만 원하더라고요. 기왕이면 그냥 다 벗어 드릴게요, 했죠. 애매하게 걸치는 것도 그림이 안 나올 것 같고요.
김강훈 사실 옷이든 뭐든 걸치는 걸 원하진 않았어요. 인간 대 인간의 대화였으면 하는 바람에 전신 나체이길 바랐는데, 선뜻 이야기해주니까 덥썩 물었죠.

주우 작가는 어떤 작품에 대한 기억을 나누고 싶은가요?
박주우 제가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게 한 작품이 떠올라요. 동그란 외곽 틀에 행성을 그린 걸 아끼죠. 전 대학 졸업 후 그림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경제적인 문제도 어렵고요. 그즈음 아트창고 레지던시 제안을 받았는데, 그때 완성한 ‘in my space’입니다. 즐겁게 작업한 기억이 있어요. 최근 작품은 버려진 오토바이 하나를 보고 허무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예요. ‘쓸모’를 담은 물건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버려진 이동수단에 대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인생의 허무함, 덧없음을 나타내고 싶었고, 그 맥락에서 유한한 삶이란 게 어찌 보면 희망적인 이유가 있을 거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작업이죠. 다른 사람에게는 사회문제로 읽히기도 해요.

매일의 작업 스타일은 각자 다른 편인가요?
김강훈 저는 중구난방이에요. 자다가 새벽 2시에 작업실에 나와서 할 때도 있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기면 바로 나와서 해결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스스로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정한 시각에 와서 작업 할당량을 채우는 게 맞는데, 그러면 그림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작업 시간을 딱히 구분 짓기가 어려워요.
박주우 저도 불규칙한 편이에요. 해가 져야 제대로 그림을 그리는 편이긴 하지만요.
임영실 집과 작업실 사이의 거리가 멀다 보니, 일정 시각을 두고 작업하는 편이에요. 대략 점심 즈음 와서 오후 5시 전엔 작업실에서 출발하죠. 실질적으로 점 하나만 찍고 갈 수도 있고, 점을 찍을까 말까 생각하며 보낼 수도 있어요. 물론 작업속도가 상당히 빠를 때도 있고요. 작업량이나 속도는 규칙적이지 않아요. 일상 시리즈는 언제 어디서나 하고 있고요.

앞으로 작가들과 마주할 기회가 있을지요?
박주우 올 한 해 개인전도 두 번 하고, 개인적인 일도 있어 정신없었어요. 좀 쉴까 해요.
임영실 저는 여유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요. 일단 내년 8월 말에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에서 일상 시리즈로 전시할 계획이 있습니다. 적당히 작업하고, 적당히 전시하려고요.
김강훈 내년 한 해는 작업에 열중하려고 해요. 올해 11월에 중국 취안저우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 작가의 교류전이 있었는데 거기서 다시 깨달은 게 있거든요. 부대행사로 중국 작가와 이틀간 사생화를 즐겼는데, 중국 유학 시절에도 제일 재밌던 작업이었다는 걸 환기하고 왔죠. 자세한 내용을 공유할 순 없지만, 달려보려고 합니다.

글: 강미승, 사진: 한용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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